속방과 자주 사이에서 1

사편(史片)/근현대사 2009. 5. 18. 23:59 Posted by 아현(我峴)
속방과 자주 사이에서 1

조선은 강화도 조약이후 여러 나라들과 조약을 맺게 됩니다. 이는 이홍장의 계책이 숨어 있습니다. 조선은 강화도 조약이후에도 대원군에 의해 쇄국정책을 추진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쇄국이라는 것이 조선 스스로만의 생각일 뿐 결코 그렇게 될 성격이 아니었습니다. 강화도조약체결과 함께 이제 조선의 역사는 세계사속에 편입됨으로써 주변의 정세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한 세력은 역시 중국과 일본이었습니다. 일본은 대만을 점령하고 그 사이에 있던 유구마저 오키나와로 강제 편입을 하였습니다. 유구는 중국에 도움을 청하지만, 중국도 사정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베트남에서 마저 종주국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함으로써 중국은 스스로의 자구책을 모색하지만, 난징조약이후에서 서양세력을 여전히 오랑캐로 인식하는 중화중심주의는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발현이 바로 조선에 대한 강경책에서 나타납니다. 일본의 야욕을 알게된 중국은 조선에 대해서 상당히 적극적인 개입을 시작합니다. 조선이 쇄국을 하던 말던 결국 이 당시 중국의 영향을 결코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이홍장의 생각은 조선이 다른 서구 국가들과 조약을 체결하여 일본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고 했습니다. 이에 미국에 처음으로 주선하는데, 이홍장의 생각은 일본이 조선과 강화도조약을 체결할때 자주독립국이라고 한 것을 미국에게는 조선이 중국의 속방임을 천명해 달라고 요구하지만, 미국이 거절합니다. 이에 중국이 한발 양보하여 이 조항은 제외시키게 됩니다. 그러나 중국은 조선에 다른 요구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조약을 체결한 뒤에 다른 나라와의 공문서에는 조선이 중국의 속방임을 표기하게 합니다. 다음은 원세개가 조병식에게 보낸 공문서 입니다

청안1. 657번 문서 <각국주재조선사신에 전권이자물용의 건> 고종24년 9월 5일
발신 청총리교섭통상사무 원세개
수신 독판교섭통상사무 조병식

이홍장의 전보를 받아서 알린다. 조선은 다른 국가와 조약을 맺는 것은 안되는 것은 아니며 다만 조선은 물산이 별로 많지 않고 상무도 아직 발달하지 않고 게다가 오랫동안 변을 당하여 국가에 돈이 모자란다. 억지로 돈을 조달하면 빚이 날로 많아질 것이다. 국가계획에 아무 도움도 안되고 다른 국가의 멸시를 받을지 모른다. 조선 국왕은 중국에 의뢰하여 이 일을 상세히 고려하고 신중하게 시행하기를 바란다. 모든 외국에 보내는 사신들이 중국과 왕래할 때 모두 속방의 예를 사용해야 한다. 전에 이홍장의 전보를 통해서 조선은 장정을 따라 처리해야 한다. 그 나머지 일들은 이홍장에게 수시로 물어보고 서로 상의하도록 한다. 예부는 이런 교지를 내린다. 만약 반드시 공사를 각국에 보내야 한다면 "전권"이라는 글자를 쓰지 말하야 하며 만국공법의 삼등공사의 장정에 맞게 되고 중국의 공사와 교제할 때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광서13년 9월 5일

위 문서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모든 일은 이홍장과 수시로 상의할 것. 둘째. 외국사신들과 교제할 때는 중국을 통해야 하며 중국에게 예를 갖추어야 한다. 셋째. "전권"이라는 말을 쓰면 안되는데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중국과 대등해지기 때문에 중국공사보다는 한등급 낮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미조약이 체결되었다고 해서 미국이 우리나라와 대등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조약 이면에는 이처럼 이홍장의 체계적인 조선에 대한 정책이 있었습니다

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