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재인식

사편(史片)/고대사 2009. 5. 18. 23:38 Posted by 아현(我峴)
고대사 재인식

한반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시대부터입니다. 이후 신석기와 청동기를 거치면서 몇차례 민족의 이동과 문화담당의 주체가 변화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예. 맥. 한족이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 정착하면서 오늘날 한국민족의 혈연적 계통이 뚜렷해졌다 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한민족도, 한국 또는 조선민족도 아닙니다. 그저 사람으로서 다양한 주민집단을 이루어 살아가고 있었을 뿐이죠. 이들의 거주지 또한 정치적 영역으로서의 한국이 아니라 지리적 영역으로서의 한반도와 만주일대였습니다....

당연한 것이지만, 그 이후 역사 전개에 따라 여러 민족체들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한민족의 경계에서 합류하거나 이탈을 했습니다. 삼국의 정립은 성읍의 형태에서 난립하던 다양한 주민집단들이 역사의 전개에 따라 더 큰 단위로 통합되어 갔던 것 뿐이죠. 이러한 부족연합 등의 형태로 나뉘어진 주민집단이 철기문명 아래 고대 국가로 통합되는 과정은 전세계적인 현상입니다. 그러나 언어 문화 등 민족구성의 객관적 측면에서 일정한 유사성이 존재한다고 해서 민족이 형성되었다고 하기에는 이릅니다. 삼국의 출현은 중심부족들이 인근의 다른 부족들을 포섭 통합하려는 노력의 산문이지, 잠재된 객관적 동질성이 작용한 결과는 아닙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간의 역사적 경계는 뚜렷했습니다.

고대 한일관계사의 쟁점들을 민족적 관점에서 본다거나, 고구려와 수당의 전쟁을 외세에 대한 민족항쟁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일종의 시대착오주의입니다.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실체가 존재하지 않은 당시를 한일관계사라고 하는 것 자체가 그 한 예라고 할 수 있죠. 임나일본부의 경우, 그것이 존재했다 하더라도 일본이 주장하는 식민지지배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죠. 서양의 경우, 튜튼기사단이 동프로이센을 지배했다고 해서 2차세계대전때 독일의 폴란드 지배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며, 마르세유와 남부이탈리아가 고대 그리스의 식민지였다고 해서, 프랑스나 이탈리아가 그리스의 식민지였다는 주장도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단지 고대사회 어디에서나 늘상 있는 주민집단간의 다양한 교류의 흔적일 뿐이죠.

삼국과 중국대륙 왕조간의 관계 해석에서도 당의 지원을 받아 민족통일?의 과업을 이룬 신라의 삼국통일의 경우, 신채호는 민족과 자주의 관점에서 신라의 삼국통일을 외세의존적 반민족 사건이라 규정했고, 그것은 여전히 지금도 수긍되는 해석입니다. 애국명장으로서의 연개소문과 민족반역자로서의 김춘추에 대한 평가의 배후에는 뜨거운 애국주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고구려가 주동이 되어 만주를 포함한 방대한 영역이 통합되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민족적 위기는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문제의식이 그것입니다.

민족과 자주의 관점에서 신라의 삼국통일을 외세의존적 축소통일이라 할때, 그것은 민족이 초역사적 실체임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삼국은 이미 하나의 동일한 민족이라는 전제가 이면에 깔려 있는 것이죠. 그러나 민족은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오랜 역사과정을 거쳐 변모하여 오늘날에 이른 것입니다. 신라의 입장에서 볼때, 고구려나 백제는 피를 나눈 같은 민족이 아니라 당나라와 왜국과 마찬가지로 동맹국이 되기도 하고 적국이 되기도 하는 대외전략의 대상일 뿐입니다.

헬레네스라는 개념을 생각할때,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헬라스의 주도권을 주도 싸웠는데, 이들을 민족상잔의 비극이라고 평가하지는 않습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 서로 페르시아의 지원을 구하고자 했다고 해서 반민족적었다는 해석은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종족적 경계를 넘어서는 이합집산은 고대사회에서 흔한 현상이며, 이러한 과정 속에서 민족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통일신라와 발해의 관계 역시 다르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실학자들이 제기한 이래 남북국시대라는 개념이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용어의 이면에는 통일신라와 발해의 대립에 대해 하나의 국가가 둘로 나누어졌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다양한 민족체로 구성된 발해를 온전한 고구려유민의 국가로 볼것인가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고구려가 신라와 동일한 민족에서 갈라진 것도 아닙니다. 단일한 역사 주체를 공유한 적도 없습니다. 따라서 발해의 주체인 고구려유민과 말족족은 한국민족에 편입될 가능성 못지 않게 이탈할 가능성도 안고 있었습니다. 남북통합은 오늘날의 시대적 과제이지, 당시의 역사적 요청은 아닙니다

과잉된 민족의식에서 빚어진 가정은 비역사적이며 그릇된 가정입니다. 실제로 한민족의 원형은 삼국통일로부터 고려에 이르는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형성된 것입니다. 후삼국의 분열과 고려중기 삼국부흥운동의 등장은 아직까지는 민족형성과정이 좀더 유동적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다시말하면 삼국시대에는 한민족의 경계가 가변적이었음을 시사합니다. 유구한 단일민족이라는 관념이 단군부터 비롯된 그리 유구한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구려와 발해에 집착하는 것은 민족의 경계 개념이 아니라 근대국가의 국경개념에 기대어 해석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민족을 유동적인 경계의 개념이 아닌 고정된 국경 개념으로 바꾸어 생각하는 것은 시대착오주의에 불과합니다. 이는 또한 현재의 상황으로 볼때는 분단 상황을 고착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출처 : 분명 박노자 선생의 글을 읽고 정리한 것 같은데 어디서 있는지 모르겠다.

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