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주-중간고사(역사와 교양)

우송대강의/2012.2학기 2012. 10. 18. 11:34 Posted by 아현(我峴)

8주-역사와 교양 02+07+16반

중간고사 시험문제

 

1. 다음 글은 세조 13년 4월 5일에 있었던 실록의 기록이다. 글을 보고 “사방지”를 처벌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왕과 신하들이 사방지를 바라보는 인식은 무엇인지 쓰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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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김귀석(金龜石)의 아내는 이순지(李純之)의 딸이었다. 일찍이 과부가 되었는데, 그 친척인 연창위(延昌尉) 안맹담(安孟聃)의 종[奴-남자노비] 사방지(舍方知)라는 자는 턱수염[鬚]이 없어 모양이 여자와 같은데다가 재봉(裁縫-바느질)을 잘하여 여자 옷을 입고 일찍이 한 여자 중을 통간(通姦-간통)하였다. 여자 중과 이씨(李氏)는 이웃하였으므로 사방지(舍方知)가 인연이 되어 이씨(李氏)의 집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는데, 마침내 사랑하고 가까이 친해짐을 보고는 좌우에 있으면서 음식도 그릇을 같이 하고, 앉고 눕는데도 자리를 같이 하며 의복(衣服)도 빛깔을 같이하니 모두 사치스럽고 화려하기가 극도에 달하였다. 노비(奴婢)가 섬기기를 집 주인과 같이 하여, 이웃 마을에서 비록 알더라도 이씨(李氏)는 달리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니, 추잡한 소리가 퍼지어 대관(臺官-감찰관)이 이를 규찰(糾察-감찰)하였다. 임금이 승정원(承政院)으로 하여금 안험(按驗-조사)하게 하고, 사족(士族-양반)을 더럽히고 욕되게 함은 옳지 못하다 하여 석방하려고 하니, 길창군(吉昌君) 권남(權擥)이 치죄(治罪-죄로 다스림)하기를 힘껏 청하므로, 명하여 사방지(舍方知)를 의금부(義禁府)의 옥(獄)에 내려 핵실(覈實-조사)하게 하고, 이어 이순지(李純之)의 구처(區處)에 붙이니, 이순지가 엄호(掩護-보호)하여 징치(懲治-죄를 줌)하지 아니하고 시골집[村莊]에 두었는데, 이씨(李氏)가 온천(溫泉)에 목욕함을 칭탁하고 따라갔다. 이순지가 졸(卒-사망)함에 미치자 사방지는 다시 이씨(李氏)의 집에 들어가 처음과 같으므로, 헌부(憲府-감찰관)에서 안찰(按察-조사)하고 여의(女醫-여자의사)로 하여금 증험하여 보게 하였더니, 과연 그러하였다. 이순지(李純之)가 여러 재상(宰相)에게 말하기를,

“헌부(憲府)는 어찌 혹심합니까? 그 근거는 바로 쓸데없는 군말이고 진실이 아닙니다.”

하니, 당시 사람들이 기롱하기를,

“속담에 사위를 췌랑(贅郞)이라고 부르니, 이공(李公)의 발명(發明-밝힘)은 진실을 발명하였다.” 하였었다. 이에 이르러 한명회(韓明澮)가 아뢰기를,

“사방지(舍方知)는 다시 이씨(李氏)의 집에 들어가 추납한 흔적이 더욱 현저하니, 청컨대 먼 지방으로 유배(流配)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전에도 이미 국문하지 않았으니, 지금도 또한 우선 용서하라.” 하니, 신숙주(申叔舟)와 심회(沈澮)가 진언(進言)하기를,

“사방지(舍方知)는 일찍이 한 여자 중을 통간(通姦)하고 여자 중은 마침내 머리를 길렀으니, 그 정상을 알 만합니다. 청컨대 도성 안에 머물러 풍속(風俗)을 오래도록 더럽힘이 없게 하소서.” 하고, 홍윤성(洪允成)은 아뢰기를,

“신과 한계희(韓繼禧)·노사신(盧思愼) 등이 함께 들었으니, 이 일은 진실로 허위가 아닙니다.” 하고, 신숙주(申叔舟)가 또 아뢰기를,

“외간(外間)에서 전하는 말이, ‘사방지(舍方知)가 아니고 바로 서방적(西房的)이라’고 하니,【속담에 사위는 서방(西房)에서 묵으니, 따라서 사위를 서방(西房)이라고 부른다.】 이와 같은 사람은 강호기문(江湖紀聞-책)에도 또한 있습니다.” 하니, 임금이 서거정(徐居正에게 이르기를,

“경(卿)도 또한 아는가?” 하니, 서거정이 대답하기를,

“과연 있습니다. 그 말에 이르기를, ‘하늘에 달려 있는 도리는 음(陰)과 양(陽)이라 하고 사람에게 달려 있는 도리는 남자(男子)와 여자(女子)라고 한다.’ 합니다. 이 사람은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니, 죽여서 용서할 게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좌승지(左承旨) 윤필상(尹弼商)에게 이르기를,

“이 사람은 인류(人類)가 아니다. 마땅히 모든 원예(遠裔)와 떨어지고 나라 안에서 함께 할 수가 없으니, 외방(外方) 고을의 노비로 영구히 소속시키는 것이 옳다.” 하였다.

이씨(李氏)의 집은 돈이 넉넉하고, 한 아들이 있으니 이름은 김유악(金由岳)이다. 하동군(河東君) 정인지(鄭麟趾)의 사위가 되어, 일찍이 그 어미에게 울면서 간하였으나, 마침내 용서를 받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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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선시대 살았던 유형원(柳馨遠, 1622~1673)은 그의 책에서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킨 일을 두고 “신라가 병합(竝合)했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이 사건을 두고 삼국통일이라고 부른다. 같은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르게 부르고 있다. 유형원은 왜 신라가 병합했다고 했을까.

 

3. 조선시대에 가장 큰 무서움의 대상이었던 것은 바로 “역병(疫病, 전염병)”이었다. 통계에 따르면 1660~1864년 사이에 역병은 79차례 발생한 것으로 보아 2~3년에 한번 전염병이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1807~1835년 사이에는 100만명이 감소했는데 이는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의 인명피해보다 더 큰 규모였다. 익히 알려진 역병으로는 콜레라와 두창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역병은 그 병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역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민간에서는 제사를 지내거나, 굿을 했다. 약재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병을 치료하고자 한 이유는 무엇일까.

 

4. 친일 시인이었던 모윤숙은 1947년 11월 <부인일보>라는 신문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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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새 가끔 (배추)김치 없이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일본 사람들처럼 소금에 절인 무쪽으로만 밥을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편리하고 절약적일까? …… 조선 아낙네들은 …… 옷을 못입고 밥을 굶을지언정 김장을 안하고는 못 산다. 이것은 습관 때문도 있겠으나 …… 봉건적 습성에도 달렸다. 김장을 할 형편이 못되면 못되는 대로 살 줄 아는 주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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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모윤숙의 글을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발언한 “배추김치가 비싸면 양배추 김치를 먹으면 된다”는 생각과 연관지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전통음식에 대한 생각이 무엇인지 계급과 관련지어 설명하세요.

 

5. 다음은 세조와 홍응의 대화이다. 세조가 홍응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밑줄)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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