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지배:특수?보편?

사편(史片)/근현대사 2009. 5. 16. 02:06 Posted by 아현(我峴)
일제의 지배:특수인가 보편인가

"유례없는 만행" "본국 일본보다 더 심한 파쇼적 광란으로 인한 조선인 생활의 파멸"  교과뿐 아니라 대학 교양교재의 경우에도 일베 말기의 조선인 총동원에 대한 평가는 대충 세계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만행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좌파의 경향의 전문가 일부를 제외하고는 일본학계의 경우 식민지 말기의 총동원을 어디까지나 제국주의 시대 식민지 지배의 일반형으로 보려하고 우파적 성향의 학자들은 산업개발을 들어 자원에만 관심있는 다른 열강과는 달리 좋은 결과를 주었다는 주장까지 합니다 일제 식민 지배의 보편성, 그리고 일제 시대의 개발을 강조하는 측면에서 현재의 "뉴라이트"들과 같은 속성인 모양입니다. 그럼 일본의 징용, 징병은 일국사가 아닌 세계사의 차원에서 보면 특수인가 보편인가.

전시 국민국가에서 그러한 것들이 보편이라고 해도 곳곳에서 특수적인 사례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1945년에 독일 영토에 진군한 소련 군대가 약 200만건의 독일 여성을 강간한 사건을 일으키는 등의 군대와 성폭력이 원래부터 불가분의 관계(이는 최근에도 마찬가지여서 최근 고 유고슬라비아 지역에서도 이러한 전쟁중 강간이 수만건 일어난다고 합니다)에 있었다고 해도 일본의 위안부와 같은 제도화된 성노예화는 다른데서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동원의 규모에서도 조선은 특수합니다. 현역병은 9만여명인데 비해 다른 동원은 700만명, 즉 인구의 1/3정도 됩니다. 일본보다 중앙집권력이 강한 스탈린의 소련도 2차세계대전때 그루지야에서 차출한 인구는 총인구의 17%밖에 안되었다고 합니다. 동원 피해 못지 않게 황민화라는 이름의 강제동화정책도 상당히 예외적입니다. 소련만 해도 중앙아시아의 토착민족에게 자국어 표기를 강요하고 강제 보급을 하긴 했지만, 교육의 언어는 토착어로 하고 토착 언어 신문 발행도 계속되었습니다. 내지(일본 본토)의 언어를 식민지 주민에게 강요하는 것은 국가의 영토 안으로 편입된 내부 식민지에서 자주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노르웨이 영토로 편입된 노르웨이 북부지역 원주민인 사미족은 1959년까지 노르웨이어로만 교육을 받았다고 합니다. 멀리 갈것 없이 대만에서의 중국인에 의한 대만 토착민의 경우, 일본에서 아이누족, 오키나와 원주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죠. 이러한 내부 식민지가 아닌 늦은 시기에 획득된 조선같은 외부 식민지의 경우에 이러한 동화정책은 매우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그들의 만행이 유례가 없다는 것도 과장만으로 들리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식민지 주민에 대한 전시 징병은 일제의 특수인가. 소련에서 중앙아시아 주민을 공민으로 취급하여 제2차 세계대전에 주저없이 그들을 징병했습니다. 식민지 주민을 총알받이로 삼은 것은 소련 뿐이 아니었습니다. 톨레랑스의 고장 프랑스도 19세기 중반부터 서부 아프리카 식민지의 주민들을 병사로 이용했으며, 세네갈 같은 일부 서부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정식 징병제를 실시해 대규모 총알받이 차출을 단행했습니다. 애초에 프랑스인들은 그들을 노예로 잡아들였으나 뒤에는 피정복 지대의 원주민들에게 그들을 살려주고 토지소유권을 인정해주는 "합법적인" 조건으로 군 복무를 강요해 19세기말에는 상당수 아프리카 빈민들이 군에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식민지 약탈경제의 상황에서 군복무만이 아사를 면하고 신분 상승을 이루는 유일한 방편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또한 모로코 정복 당시에 열대지역에서 기후와 전염병에 약한 백인 군인보다는 현지 흑인이 훨씬 효과적이라 생각하여 세네갈 군인을 정예 병력으로 이용하는 "효율적인" 전략을 세우기도 합니다. 또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그들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전쟁에서 21만명을 징병하여 대체 병력으로 세우기도 합니다.

일제 말기 동원 규모와 동화정책, 위안부 연행이 세계사에서 보기 드문 만행으로 봐서 일제 식민지배의 특수였다고 해도, 주민의 동원 자체는 일제의 식민지 경영에서 내지연장주의에 따른 제국주의 열강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통점인 만큼 우리가 일제를 비판하는 동시에 공화주의 구호를 내걸고서 유럽에서 열강 사이의 싸움에 아프리카인들을 총알받이로 마구 이용했던 프랑스나 사회주의 간판을 내걸고서 1941년부터 고려인을 비롯한 "볼온 민족"을 징용에 끌고 갔던 소련도 아울러 비판하는 것이 "보편적인 태도"가 아닐까 합니다. 일본은 그렇게 비판하면서 같은 일을 저지른 프랑스나 러시아에 대해서 관대한 것은 과연 어떠한 태도일까요

또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식민 모국의 강제 동원이 탈식민 민족국가에 미치는 장기적인 영향입니다. 프랑스인들이 원주민 병사를 차출하는 방법을 본떠서 현재 독립한 구 프랑스 식민지 국가들은 똑같은 일을 소년병사 모집에 이용하고 잇습니다. 일제 말기의 징병제도를 그대로 이어받은 남한도 해마다 병역거부자나 병역기피자를 양산하는 가운데 사회 혼란을 야기시키고 있습니다. 요즘 연예계를 시끄럽게 하는 모 연예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죠.

오늘날 지배자들에게 필요하고 편리한 식민지 통치의 유산이 지금도 살아 숨쉬기에 친일 청산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진정한 친일청산은 민족 정기와 같은 국수주의적 관념에 입각하는 것보다 일제로부터 물려받은 권위주의적 동원체계를 인권적, 민주적 기준에 따라 뜯어 고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합니다.

참고문헌 : 기억이 가물가물

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