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록(頒祿)

사료(史料)/조선시대 2012. 1. 8. 12:31 Posted by 아현(我峴)

호조가 아뢰기를,
“내년부터 반록(頒祿)하도록 하시면 1년에 응당 써야 할 미두(米斗)를 먼저 계산하여 마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병술년조(1646년, 인조24년)의 세입(稅入)인 경우 각도 전결(田結)의 총수 계본(摠數啓本)이 아직 일제히 도착되지 않아 그것이 얼마인가는 상세하게 모른다 하더라도 각 창고의 현재 남아 있는 곡물 가운데서 12월 분의 반료(頒料) 숫자를 계산하여 덜어내면 나머지가 쌀은 5만 1천 1백 79석이고, 소미(小米)는 1만 3천 7백 8석이며, 콩은 3만 5천 6백 29석입니다. 을해년(1635년, 인조 13년) 1년 4과(四科)에 반록한 숫자를 가져다 상고하면 쌀이 3만 6천 9백 28석이고 콩은 1만 6천 5백 4석인데, 군병(軍兵) 등 제색(諸色)의 산료(散料)인 쌀과 콩은 원래 이 숫자에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 4과에 응당 지급해야 할 원수(元數)를 가지고 그 한 과(科)에 지급하는 수를 계산하면 쌀이 9천 2백 32석이고 콩이 4천 1백 26석입니다. 때문에 이 한 과의 수 및 정월 이후 석 달 간의 훈국(訓局)의 출신(出身)과 군병(軍兵), 각 아문의 장관(將官)과 군관(軍官), 그리고 대궐 안의 하인과 제색 공장(諸色工匠), 서리(書吏) 등의 산료를 아울러서 계산하면, 쌀이 2만 4천 1백 78석이고 콩이 5천 6백 23석입니다. 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각곡(各穀)의 수를 가지고 을해년에 쓴 것과 비교하여 짐작해서 마련한다면, 반록은 정월·4월 양과(兩科)는 겨우 지탱하겠고 산료는 6월까지 지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소미(大小米)의 남은 수는 1만 6천 5백 석 남짓하고 콩은 2만 4천 3백 80석 남짓하여 추등(秋等) 및 잡색 산료(雜色散料)를 나누어 주려고 하면 그래도 나누어 쓸 수 있겠지만, 그 사이 뜻밖에 쓰일 것에 대해서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으니, 각 창고에 저축된 것은 다 써버리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대개 한 과에 반록하는 수를 통틀어 계산하면 쌀이 9천 6백 50석이고 콩이 7백 13석인데, 반료(頒料) 때에는 보태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훈국 출신 1천 20여 명에게 1년에 방출하는 쌀과 콩이 1만 4백 50여 석에 이르니, 이것은 을해년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매년의 경비가 전년에 비교하여 점차로 많아지니, 이는 모두 이러한 군병이 늘어나기는 해도 줄어듦이 없어서입니다. 지금 을해년 해품(該品)에 반록한 수를 모방하여 별단(別單)으로 서계(書啓)하여 예람(睿覽)에 대비하였습니다만, 이 숫자 역시 매우 많지 않으니 또 보태거나 줄이는 것은 어려울 듯합니다. 이 예(例)에 의거하여 소미(小米)를 섞어 마련하여 나누어 지급하도록 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인조실록> 권47, 24년 11월 21일(계해))

뭔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