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신분상승에 대한 오해

사편(史片)/조선시대 2009. 4. 22. 04:06 Posted by 아현(我峴)
신분제 해체론은 호적에 기재된 직역을 분류하여 조선후기 사회구조의 변화를 분석한 일제시대 일본인 학자 시카다 히로시(四方博)의 연구에서 유래하였다. 지금도 신분제 해체를 설명하는 연구는 그의 연구 방법론으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그는 조신시대의 사회구조를 양반-평민-노비라는 사회계층으로 구분하고, 18세기 이후 양반층의 비대화를 조선사회의 후진성 내지는 정체성으로 인식하였다. 후대의 연구자들은 이를 18세기 이후의 양반층 증대에 더해 노비감소 현상에 주목하여, 신분제 자체가 허구화되어 조선사회가 해체되어 가는 현상으로 재해석했다. 같은 자료를 가지고 같은 통계를 냈는데, 해석방법만 다를 뿐이었다.

이에 따르면 양반은 한없이 증가하고, 노비는 거의 해체되는 지경에 이른다. 그러나 우선 노비의 비중이 조선시대 전과정을 통해 일반적으로 감소 경향만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먼저 주목해야 한다. 17세기에는 호적에 등재된 노비는 당시 전체 인구의 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후 감소하게 되는데 교과서에서는 19세기에 거의 소멸된다고 나오는데 그렇지 않다. 19세기초에 공노비가 혁파되어 감소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노비는 엄연하게 존재하였다. 그러면 사노비도 감소하였던 것일까. 기본의 연구에서 보여준 통계는 戶를 기준으로 한 것이지, 口를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다. 노비에는 외거노비와 솔거노비가 있다는 것은 다 알 것이다. 19세기에 들어서 외거노비는 사라지고 솔거노비가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외거노비는 상전집 밖에서 살고 있어서 독립적으로 戶를 만들 수 있었지만, 솔거노비는 상전집 안에서 살고 있었으니, 노비호가 감소되고 있던 것이지, 노비 자체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현재의 연구에 의하면 오히려 19세기에 노비가 15%까지 하락하다가 19세기 중엽 이후에 노비가 다시 25%정도로 증가한다고 한다

18세기를 거치면서 노비가 감소하는 이유에 대해 한편에서는 노비가 상전의 수탈을 피해 도망하여 양인화하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상전이 노비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두 견해 모두 일리가 있다. 그러나 도망한 노비는 다른 상전을 찾아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노비가 상전을 택한 것이다. 일제시대 반촌에 살던 일반민들이나, 해방 이후에 반촌에 살던 사람들이 양반의 억압을 벗어나 도시로 나아가 살 것 같지만, 그렇지 않고 반촌에서 양반들의 일을 거들으며 살고 있었다. 그들은 그곳을 벗어나지 않았다. 1950년대 농촌사회를 연구한 논문들을 보면, 대체로 한결같은 내용이다. 노비가 도망하여 양인으로 살것이라는 건 우리의 상상이다. 실증없는 허상이다.

15세기 말 오희문이라는 사람이 <쇄미록>이라는 일기를 썼다. 나중에 구해서 읽어보라. 상당히 재미있고, 우리의 상상을 깨는 내용들이 많다. 국사교과서에서 배운 것과 실제 그 당시의 자료를 보면 괴리를 많이 느낀다. 그 책에 첫 머리를 보면, 노비가 상전집에 뛰어 들어와 상전과 다투는 장면이 등장한다. 종놈이 감히 주인에게 대드는 것도 황당한 일인데, 일기의 저자는 꾸짖고 달래 간신히 두 사람을 말리고 있으니, 더욱 기가 막힌다. 억압과 착취에 꼼짝 못하는 노비의 모습이 당시 분위기의 전형적인 모습은 아닌 듯하다. 이러한 모습들을 보면 양인과 노비가 현실적으로 구분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드네요. 전 구분이 안되었을거라 생각한다. 그 하나의 예로 18세기 후반이면 양인이 자신 또는 가족을 노비로 파는 自賣문서가 발견되기 시작한다. 그 문서의 대부분은 “생활고에 시달리다 어쩔 수 없이”라는 이유를 달고 있다. 자매는 이렇듯 빈한한 자가 의지할 곳을 찾는 방법의 하나였다.

지금까지 노비에 대한 이야기였다. 과연 노비의 처지는 어땠을까. 그들의 삶의 목표는 무엇이었을까. 제가 생각하는 노비상을 이야기 하자면, 그들은 상민들과 처지가 같은 농민들이었을 것이다. 단지 국가에서 정책으로 내세운 양천제에 의해서 양인과 천인으로 구분되었을 뿐인데, 지방사회에서는 전혀 고려되지 않은 정책이었다. 국가의 정책은 양인에게만 불리하게 되어 있는 정책이었다. 17세기에 반 이상이 노비였다는 것은 양인이 천인화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 참고문헌 : 오래전에 쓴 글이라 어느 논문에서 배껴 적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현 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