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주차 강의(우송대)

우송대강의/2011.2학기 2011. 11. 6. 22:04 Posted by 아현(我峴)

6주차 강의(우송대) - 2011년 10월 14일

* 지식채널
- 233 : 한강의 남쪽 1부 땅의 역사
- 237 : 한강의 남쪽 2부 배움의 역사
- 524 : SPEC UP
- 600 : 몇 가지 오류 1부

* 3가지 사실의 의미

이번시간의 강의는 사실에 대한 것입니다. 역사는 기본적으로 역사적 사실에 기초를 두고 있는 학문입니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으면 그건 역사가 아니라 소설이 되겠죠. 역사에 기초한 역사소설이라는 것도 결국 얼마나 역사적 사실에 근접해 있는가에 따라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또한 같은 인문학이지만 철학과도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사실로서의 유무와 관련을 가집니다.

역사에서 의미하는 사실에는 세 가지가 존재합니다. 하나는 “과거의 사실”로 과거에 있었던 그대로의 사실을 말하며 이는 곧 진실이나 진리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다른 하나는 “사료로서의 사실”로 과거의 사실 중에서 그대로 흔적으로 남아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사실을 말합니다. 고문서나 고서, 그림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마지막으로 “역사적 사실”을 들 수 있습니다. 사료로서의 사실 주에서 역사가들에 의해 객관적으로 재구성된 사실을 말합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역사는 바로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첫째 “과거의 사실”은 과거의 진실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진실을 이야하고자 하는 노력을 역사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철학에서 말하는 절대적인 이상향인 이데아나 유토피아, 철인(哲人) 혹은 성인(聖人)의 경지가 역사에서 말하는 진실에 해당합니다. 절대적인 진리를 찾고자 하는 노력이 철학이라고 한다면 인간의 역사에 대한 진실이 무엇인지 알려고 노력하는 학문이 역사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그 진실은 어느 누구도 알 수 없으며 앞으로도 알지 못할 것이 분명합니다. 철학에서 이상세계 혹은 이상적인 인간상을 상정해 주고 이에 나아가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주듯이 역사에서도 과거의 진실을 염두해 두고 그 모습에 가깝게 과거의 재현하려고 하는 모습이 역사라는 학문의 목표가 됩니다.

다만 그것에 나아가려는 의지만 있을 뿐 실제 그렇게 이루지는 못합니다. 철학자였던 마르크스도 자신의 자본론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속성에 대한 분석을 통해 사회주의, 공산주의로 나아간다는 이론을 정립하였으나 실제 공산주의는 도래하지 않습니다. 단지 이상일 뿐이죠.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철학은 미래에 대한 이상향임에 비해 역사는 과거에 대한 이상향이라는 점입니다. 과거의 사실은 실제로 과거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타임머신이 있지 않는한 과거의 일을 100%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과거에 있었지만 과거 그 자체는 이상향으로 남을 뿐 모두 알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의 사실은 과거의 진실이 되고 맙니다.

둘째 “사료로서의 사실”은 쉽게 말해 현재 남아 있는 과거의 자료들입니다. 과거의 자료는 무수히 많습니다. 전문적인 역사자료인 고문서나 고서 이외에도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이 사료로서의 사실에 해당합니다. 거창하게 우리 민족의 역사를 이야기 할 것없이 가깝게 우리 가족의 역사를 생각해 보면, 우리 부모님의 옛 모습이 궁금하다면 부모님의 사진첩을 살펴보면 됩니다. 나의 현재 모습과 나와 같은 나이대에 찍은 부모님의 사진을 본다면, 나와 얼마나 닮았었는지 어떠한 모습을 달랐었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며, 부모님과 내가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지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과거 부모님의 생각을 알고 싶다면 부모님의 일기나 편지를 살짝 들여다 보면 됩니다. 현재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그 당시 부모님의 삶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변화했는지 흘겨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이 바로 사료로서의 사실에 해당하게 됩니다. 사료로서의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후일 나의 모습을 재구성하고 싶을 때 그에 해당하는 연결고리를 남아 있는 자료로서만 이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찮은 물건이라도 그것만 가지고도 옛 일을 되살릴 수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국가 차원으로 끌어 올리면 "국립문서보관소"라는 것을 접하게 됩니다. 대한민국에서는 국가기록원이라고 지칭을 하며 중국에는 당안관이라는 기관이 있습니다. 기록의 중요성은 현대국가에서 좀더 가치있는 일로 평가를 받습니다. 그래서 정부에서 생산되는 모든 자료는 그것의 보관에 대한 필요성 때문에 "문서보관소"에 보관을 하게 됩니다. 현대 정부에서 어떠한 정책들을 시행하는데 전례를 참고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옛 기록들을 찾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정책에 대한 평가와 판단도 아울러 보관소에 남아 있는 기록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이는 국내의 문제 뿐만 아니라 국제 관계에서도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됩니다. 미국은 북한과의 정책에서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북한노획문서"를 활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여담입니다만 북한의 역사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에 있는 문서를 보아야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한국에는 북한관련 문서가 없기 때문이죠.

셋째 “역사적 사실”은 재구성된 과거를 말합니다. 재구성의 과정은 앞서 말한 “사료로서의 사실”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며 재구성의 목표는 “과거의 사실”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사료로서의 사실과 과거의 사실 사이에 역사적 사실이 어느 중간에 존재하게 됩니다. 이러한 인식 하에서 역사를 생각해 본다면 역사는 과거 그 자체일 수 없으며 과거의 담론(인식틀)에 해당하게 됩니다. Keith Jenkins는 “역사의 의미는 원래부터 과거에 내재해 있던 것이 아니라 외부에 의해 과거에 부여된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역사는 과거 그 자체가 아니라 과거에 대한 담론이고 진실게임은 역사도 아니고 아무의미 없는 일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역사는 기억에 대한 투쟁이며, 기억의 정치학이기도 합니다. 되도록 과거의 기억에 가깝게 나아가고자 하는데 역사의 의미가 있으며 과거에 그러한 사실이 있었는지의 유무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고조선의 영역을 찾으려 한다고 합시다. 고조선에 대한 기록은 단군신화에 대한 기록이나, 후일 단군조선이 기자조선으로 그리고 다시 위만조선으로 이어지다가 망했다는 사실 뿐입니다. 고조선이 어느정도의 영토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알려주는 자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유일한 단서는 고조선이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 존재하던 시기입니다. 이 시기는 BC 20세기부터 존속했다고 하지만 실제 고조선이 번성을 누리던 시기는 대개 BC 7세기 정도부터 시작하여 BC 1세기 경에 이르는 기간입니다. 이는 중국의 역사서를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변방지역의 국가가 강성하지 않았다면 중국 역사서에 나오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죠. 이 시기에 중국 역사서에 고조선이 집중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고조선이 강성하던 시기를 파악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면 영역은 어떠할까. 역사서를 통해서는 쉽게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대신 땅 속에서 발굴되는 유물을 통해 유추가 가능합니다. 이 시기 유물로 이 지역에서는 비파형동검이 다량 출토되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이 동검이 거의 출토되지 않았다는 점을 착안했을 때 이 지역을 이 시기에 다스린 국가는 고조선이 유일했으므로, 이 동검을 통해서 고조선의 영역이 비파형 동검이 출토된 지역이었다고 단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