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주차 강의(한국사새로읽기)

건양대강의/2011.2학기 2011. 10. 14. 23:52 Posted by 아현(我峴)
5주차 강의(한국사새로읽기)

* 지식채널

- 258 : 나의 살던 고향은
- 671 : 환상적인 실험 1부
- 673 : 환상적인 실험 2부

* 일제시대 한국인의 유형

-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진 B, C급 한국인에 대한 시선의 문제.
- 식민지 조선에서의 조선인과, 만주에서의 조선인에 대한 단상.
- 만주에서 조선인은 지배층인과 피지배층인가.
- 만주에서 중국인과 한국인이 대결한다면 일본인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 만주에서의 만보산 사건과 조선에서의 호떡집 습격 사건
- 강제로 끌려가 일본군에 남아 전범이 된 조선인을 현재 우리는 이해할 수 있는가.

* 파시즘(Fascism, 대중독재)

- 개념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 위키백과
- 파시즘 이해하기 : 우리는 어떻게 독재화되는가
- 대중의 불안 → 우리를 만족시켜줄 지도자의 등장 → 만족에 대한 완벽한 믿음 → 지도자의 모든 것을 믿고 따름 → 지도자 독재의 용인
- 합법화된 지도자의 독재를 대중이 용인하고 묵인.
- 죄의식이 부재, 책임의 부재
- 우리 안의 파시즘 : 대한민국 사회에 내재화된 파시즘은 무엇일까.
- 한국의 파시즘은 일본제국주의 시대부터 유래, 박정희 시대 때 더 강화됨.

* 강의 - 역사는 왜 배우는가.

역사는 보통 다음과 같이 정의됩니다.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 그러나 실제로 이 대화방식은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습니다. 우선 위 정의에서 변수가 될 수 있는 조건을 보면 3가지로 구분됩니다. 과거, 현재, 대화. 하지만 과거는 변수가 될 수 없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과거는 그 자체로 진실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고 또한 변하지도 않습니다. 종종 어떠한 자료가 발굴되는가에 따라 변화를 받지만 그것 또한 실제 있는 그 사실을 어느정도 알고 있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문제는 바로 현재와 대화에 있죠.

대화는 어떨까요. 대화란 현재가 과거에 말을 거는 것을 뜻합니다. 거꾸로 과거가 현재에게 말을 걸 수는 없는 노릇이죠. 타임머신이 있지 않는한. 그러므로 대화의 주체는 현재가 되고 그 대상은 과거가 됩니다. 이렇게 대화의 방식을 한정하게 된다면 문제는 간단해 집니다. 현재의 일방적인 대화인가. 아니면 과거를 배려하는 상호소통적인 방식인가로 나누어집니다.

일방적인 대화란 다음과 같은 것들을 말합니다. 최근 모방송국에서 방송된 선덕여왕이 상당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실제 주인공은 선덕여왕이었지만, 우린 주로 미실을 기억하고 있죠. 미실은 어떠한 여자였을까요. 그와 관계를 맺은 남자를 보면 진흥왕부터 시작하여 실제 사모했지만 일찍죽은 연인, 결혼하여 미실의 정부로 자리를 잡았던 상대등, 그리고 내연의 남자였던 병부령. 그러나 우리는 미실의 남자들에 비추어 미실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별로 고민하지 않지만 실제 미실은 현대의 기준으로 본다면 행실이 바르지 않은 부도덕한 여자임에 틀림 없죠. 이남자 저남자와 관계를 맺고 있지만, 실제 정실남편은 따로 있고, 자기가 사모하는 남자를 따로 있으니까요. 그리고 정실남편과 사모하는 남자 사이에 각기 아들들이 존재하고, 그 아들들은 호형호부하는 사이죠. 그러므로 우리의 사고방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미실이 됩니다.

상호소통적인 방식의 대화는 무엇일까요. 우선 과거의 배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현대 한국사회도 그러하기 때문에 선덕여왕이 살던 신라시대 신라인들도 우리와 같은 방식의 사고방식을 했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인 착각이자, 현대인의 오만이죠. 미실의 남자관계를 놓고 본다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사실들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니죠. 신라사회의 연애관 내지 결혼에 대한 풍습이 현대 한국사회와 다르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을때, 일부일처제와 여자가 남자 집에 시집을 가는 형태의 결혼이 조선중기 이후에 한반도에 정착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고 있을때에야 비로소 미실의 남자관계가 좀더 뚜렷하게 이해가 됩니다. 즉 신라사회는 그렇게 해도 문제가 되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러운 그런 사회라는 것이죠. 일부일처제의 방식과 간통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던 사회가 바로 신라사회였으므로 미실과 관련된 사실들은 보다 더 잘 이해가 되는 것이고 역사적 해석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죠.

그러나 상호소통적인 방식에도 일정한 한계는 존재합니다. 바로 대화를 거는 현재가 어떠한 상태에 놓여 있느냐의 차이에 있죠. 과거에 말을 거는 현재가 수동적이고 적극적이지 않다고 한다면 상호소통적인 방식의 대화작동에 문제가 생깁니다. 즉 내가 누구인지, 현재 내가 놓은 환경이 어떠한지에 따라 대화는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한나라당에 소속되어 있는데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적인 모습보다는 그 이면에 자리잡고 있던 인권의 후퇴성을 이야기한다면 내 자신이 속한 당 안에서 온전하게 남아 있을 수 있을까요? 내가 고려대에 속해 있는 교직원인데 일제시대 김성수의 친일적인 행각을 학교발전을 위해 노력한 사실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라고 학내에서 말하고 다닌다면 난 그 사회에 남아 있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역사는 정치적인 성격을 띄게 됩니다. 역사의 정치성이죠.

정치는 곧 권력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현재는 권력에 둘러싸인 환경에 의해서 지배를 받게 되고 자연스럽게 과거에 말을 걸어야 하는 현재는 그 권력의 통제 내지는 눈치를 보게 됩니다. 즉 대화는 현재 어떠한 구조에 있는가에 따라 그 방식을 달리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역사란 무엇인가"의 물음은 그 의미를 많이 상실하게 됩니다. 그 질문과 동시에 그 상위에 있는 근본적인 물음은 역사는 어떻게 구성이 되고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가 등의 질문들이 모두 무의미한 질문으로 퇴색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죠. 즉 드러내야 할 것들을 이 질문과 더불어 감추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역사의 정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아야 하고 질문을 바꾸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 역사에 대해서 궁금해해야 할 것은 역사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바로 "그 역사는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하는 것입니다.

한국사관련 교과목에는 서로 다른 이름이 존재합니다. 하나는 국사(國史)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사(韓國史)입니다. 중등교육과정에서는 국사로, 고등교육과정에서는 한국사로 부릅니다. 같은 한국의 역사인데 왜 다르게 부를까.

국사라는 말은 말 그대로 "그 나라의 역사"를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나라는 당연히 한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국사는 자연스럽게 한국의 역사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한국 안에서만, 그리고 한국인에게만 통용되는 용어입니다. 일본인이나 중국인에게 국사라는 말을 쓴다면 각기 일본의 역사나 중국의 역사를 가리키지 한국의 역사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국사라는 말은 본래 상대적인 말입니다.

국사 말고 그와 같은 용어로 국어, 국군 등의 용어가 있습니다. 국사처럼 국어는 그 나라의 언어, 국군은 그 나라의 군인을 지칭하지만, 우리는 실제로 한국의 언어, 한국의 군인을 가리킵니다. 상대적이라는 것은 그 용어가 가지고 있는 주관성으로 인하여 받아들이는 사람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얼마전까지만 하여도 우리는 살색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우리는 황인종이기 때문에 피부가 노랗습니다. 그래서 살색은 노란빛 갈색을 지칭하지만, 흑인종이나 백인종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죠. 그러므로 국사, 국어, 국군도 그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즉 국사는 우리들만의 표현이죠. 하지만 역사라는 것은 우리만 누릴 수 있는 학문이 아닙니다. 일본인도 한국사를 할 수 있고, 중국인도 한국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이 용어를 고쳐부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 왜 지금까지 썼던 걸까요.

고등학교 역사교과서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한국의 모든 역사를 다루는 "국사"가 있고, 다른 하나는 근현대 이후만 다루고 있는 "한국근현대사"입니다. 문제는 하나는 그냥 국사인데, 다른 하나는 "한국"이라는 말을 포함시켰다는 점이죠. 국사는 유일하게 1종만 있으며 국사편찬위원회라는 국가기관에서 만든 것입니다. 이와는 달리 한국근현대사는 현재 6~7종이 있으며 민간의 여러 출판사에서 만듭니다. 그러므로 국사와 한국근현대사의 차이는 유일한 역사인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구분된다고 할 수 있죠.

그러면 국사와 한국사의 차이는 뭘까요. 조금 시각을 바꾸어 History와 history의 차이는 뭘까요. 용어로만 본다면 대문자일 경우와 소문자일 경우로 구분될 뿐이지만, 그 안에 담겨져 있는 내용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Apple라고 했을 때와 apple라고 할 경우 대개는 Apple는 the apple의 의미를 apple는 an apple의 의미인데 the가 붙는 경우 사과라는 과일의 한 종류를 대표해서 지칭하지만, a가 붙는 경우에는 여러 다양한 종류의 사과 중에서 어떠한 개별 사과 하나는 지칭합니다. 먹음직스런 사과이건, 맛이 없는 사과이건 모두 사과죠. 이때 후자로 지칭되는 과일의 한 종류인 사과는 the가 되고 앞의 여러 종류의 사과는 a가 됩니다.

바꾸어 예를 들면, History와 history 뒤에 of Korea를 붙였을 경우 똑같은 한국사를 의미하는 말이 되지만, History of Korea와 history of Korea라고 했을 경우 의미 차이가 크게 됩니다. History of Korea는 한국사 중에서도 유일한 역사를 가리키며 한국사를 대표적으로 설명하는 그 하나의 무엇이 됩니다. 즉 "국사"를 가리키는 것이죠. 반면 history of Korea는 한국사의 여러 유형들을 가리킵니다. 이 때의 한국사는 국사와는 달리 유일하지 않은 각기 다른 해석의 역사를 용인하는 의미를 가지고 모두 한국사로 인정을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