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주차 - 20세기 한국사학과 근대

건양대강의/2009.1학기 2009. 4. 4. 20:56 Posted by 아현(我峴)

5주차 - 20세기 한국사학과 근대
 
  20세기 한국 역사학의 특징은 3가지의 근대 신화로 이루어져 있었다. 20세기 한국사를 이끌어온 사실, 민족, 민중이라는 이 3개의 신화는 계몽적 이성의 근대적 기획을 떠받치는 주요한 기재로 작동하였다. 케이스 젠킨스가 말한 역사의 “의미는 원래부터 과거에 내재해 있던 것이 아니라 외부에 의해 과거에 부여된 것이다”라는 말 그대로 역사는 과거 그 자체가 아니라 과거에 대한 담론으로 작동한 것이 바로 20세기 한국사가 보여준 근대였다.
  사실은 실증사학이 중시한 것으로 과학으로서의 역사를 주장할 때 기본이 되는 기재이다. 대개 개별적인 사건이나 사실을 정밀하게 탐구하여 역사적 사실을 명백히 하는 것으로 그 결과는 사실 혹은 객관적 사료에 대한 계몽적 이성의 물신주의라는 협의에서 자유롭지는 못하였다. 또한 실증사학이 의존하고 있는 공식적 기록이나 사료 자체가 이미 지배권력 혹은 지식권력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실증에 대한 심각한 비판이 이미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의 과학성을 분명하게 밀고 나아갔던 것은 랑케가 아니라 마르크스였다. 그래서 한국의 진보사학이 지향했던 것이 바로 올바른 역사학이었고, 올바른 역사학을 통해서만이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미래에 대한 과학적 전망을 내릴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21세기 역사학은 역사가 무엇을 이야기 하고 있을 때, 그 무엇이 이미 특정한 권력 관계 속에 있다는 구성주의적 시각을 요구한다. 그래서 사회적 구성주의의 시각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누구에게 이야기를 하는가라는 즉 문제제기의 주체와 위치에 대한 자각이다.
 
민족은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에서 출발한 민족주의 사학의 큰 특징이었던 관념론적 역사해석, 즉 정신사관의 큰 줄기였다. 이는 문화적 민족주의와 맥락을 같이 한다. 유기체적 민족 개념은 ‘민족은 영원한 실재’이며 운명이라고 보았던 이광수 등의 문화적 민족주의자나,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동일한 정신적 존재인 것을 심화, 인식하는 총체’로서 민족을 내세운 민족주의 좌파 안재홍이나, ‘유사 이래로 동일 문화를 가진 단일 민족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하는 것은 민족 사학의 당연한 의무’라고 주장한 신민족주의자 손진태 등이 모두 공유하던 것이기도 하다. 조선얼, 조선정신, 조선심 등이 그들의 역사서술에서 핵심어였다는 사실은 민족주의 역사학에 내재된 관념적 성격을 무엇보다도 잘 드러내준다. 그래서 민족주의 사학의 목표는 민족정신의 발전과정을 추적하는데 있었다. 그리고 독자적인 국가가 없는 식민지라는 특수한 역사 상황 속에서 민족은 사실상 국가의 공백을 채워지는 관념적 실체이자 신화였다.
 
그러나 역사인식의 관점에서 본다면 민족주의 사학을 식민지 시기를 ‘제국과 민족’의 이분법으로 파악한다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라는 관점에서 볼 때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민족주의 사학은 식민지 조선의 피식민지인들이 가졌던 다양한 집단적 정체성을 민족적 정체성으로 환원시켰다. 문제는 민족주의 사학이 다양한 정체성을 억압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민족주의 엘리트를 위한 역사학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역사 일반으로 확대한다면 민족주의 사학은 민족을 초역사적인 자연적 실재로 부당 전제하는 시대착오주의의 문제점을 드러낸다. 민족은 역사적으로 증명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역사적 상상을 통해 사상적으로 일깨워야 할 대상이었다.
 
민중은 민족주의 사학과 마르크스 이론에 바탕을 둔 사회경제사학이 서로 접합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마르크스 사학은 개인의 다중적인 정체성을 계급적 정체성에 종속시킴으로써 역사의 지배와 피지배 관계가 갖는 다양한 국면들을 이해시키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마르크스 사학의 이러한 계급 중심주의의 수정은 민족주의 사학과의 접합시도로 나타났고, 그것은 바로 민중 개념의 탄생을 알렸다. 민중이라는 새로운 근대의 신화는 결국 마르크스주의와 민족주의가 공모한 결과였다. 민중이 민족이야기의 주체로 만들어졌던 것이다. 1980년대 한국에서 나타난 민중사학은 마르크스사학의 한국적 변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을 어떻게 변증법적으로 통일시켜서 한국의 역사를 파악 인식할 것인가로 나타났다.
 
그러나 민중은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을 증명하거나 옳은 노선을 검증하는 차원에서만 분석될 뿐 정작 민중 자신의 삶과 목소리는 지워져 있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민족과 계급의 프리즘으로 민중을 가두어버린 결과, 여성운동이나, 천민운동 등 민족과 계급을 넘어선 다양한 정체성을 갖는 민중 운동에 대한 평가 또한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강조한 나머지 지배계급과의 관계에서 단절시켜 피지배계급의 역사만을 고찰하는 소재주의에 있었다. 근대의 담 밖에서 보면, 민중사학 또한 근대의 포로였던 것이다. 단지 그 근대는 마르크스주의적 근대와 민족주의적 근대가 혼합된 기묘한 것이었을 뿐이다.

* 참고문헌 : 임지현, ‘근대의 담 밖에서 역사읽기’, <한국사론> 30, 국사편찬위원회, 2000.
* 건양대 역사교양강의 제5주차 강의내용입니다.

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