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

잡기(雜記) 2011. 5. 3. 00:07 Posted by 아현(我峴)

요새 자꾸 멍하다....

한국사새로읽기 01반 수업은 아무 생각 없이 멍했다. 강의 준비 못한게 너무 티가 났다. 정말 자고 싶었다. 강의 하면서 그런 생각이 내 머리 속을 멤돌았다. 인간의 욕구 중에 가장 강한게 수면욕이라고 하지 않나. 딱 그랬다. 다 관두고 자고 싶었다.

일주일만에 하는 강의인데 한달만에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그 사이에 서울 가서 수업 듣고 새로 맡게된 학회 간사 일도 했지만, 여느때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다만 조금 바빠진 것 뿐인데, 시간 상으로는 꽤 길게 느껴졌다. 마치 어제와 오늘이 한달의 시간이 된 것 했다. 나는 그대로 인데 시간이 제멋대로다.

지난주였다. 고향집에 잠깐 들렀다. 집에서는 식당을 하는데 대리운전이 1명 부족했다. 어머니께서 대신 갔다오라 해서 대리운전을 했다. 그런데 비는 오는데 내가 차 문을 못 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차는 렉서스였다. 나는 그게 렉서스인줄도 몰랐다.(나를 데리러 렉서스를 졸졸 따라온 동생이 그랬다. "형이 지금 얼마짜리 몰고 다닌줄 알어!!") 액센트만 몰고다닌 내가 렉서스를 타보기나 했나. 리모콘키는 보통 한번만 누르는데 이건 두번 눌러야 모든 문이 열렸다. 그 사이에 엄청 욕먹었다. 운전하는 데에도 엄청 욕먹었다. 운전 중에 차를 들이 받을 뻔했다. 주행이야 그럭저럭 했는데 문제는 주차였다. 차가 너무 커서 거리감이 안잡혔다. 비는 주룩주룩 오지 선탠은 또 얼마나 검게 해서 사이드미러가 잘 안보이니 거리가 안느껴졌다. 겨우겨우했는데. 아뿔싸. 시동을 끌줄 몰랐다. 이건 뭐....군대에서 선임하사에게 욕먹고 그날 첨으로 낯선사람에게 그렇게 욕먹었다. 그날은 월요일 강의했던 날이었다. 오전과 오후 내내 교수님 소리 들으며 학교에서 강의하다 밤에 어쩔 수 없이 한 대리운전에서 이사람저사람 소리 들으며 욕을 먹는데 정말 많은 생각과 만감이 교차했다. 운전하는 내내 들어보니 렉서스 주인은 병원 원장이었고 동석한 사람은 병원 의사였다. 병원장이 착해서 망정이지 동석한 병원의사는 얼마나 잘보이고 싶으면 나에게 닥달을 하고 싶었을까. 대리운전의 기억은 한동안 내 머리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우울함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나를 엄습했다. 공부해서 뭐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참.(물론 지금은 아니고....)

강의 시간에서 우스개소리로 말한 거지만 이제 나의 자유 과잉의 시대도 한달이면 끝난다. 역시나 중요한건 먹고사는 문제다. 한국실학학회 총무간사를 맡기로 하긴 했는데, 보수는 거의 없다. 연봉이 몇십만원이 고작인데, 오늘 학교 선생님께서 전화를 하셔서 그 일에 대해 말씀하셨다. 뭐 다 알고 있는 거라, 방법을 강구해 보겠다고 하셨다. 처음에 할때는 거의 봉사라고 생각하고 맡았지만, 일이 적지 않으니 유혹이야 뿌리치기 힘들다. 그게 인지상정이라.

고민되고 힘들다. 교양이면 내 생각대로 해도 무방하다. 어차피 한번 들으면 끝이니까. 그런데 사학과 전공도 아닌 경찰행정학과 전공은 갈필을 못잡았다. 시험대비로 준비하자니 여기가 무슨 학원도 아니고, 그래도 대학인데, 몇번 더 고민해 보아도 그렇게 하긴 싫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시험에 대비하면서도 대학 다운 역사학 수업을 하는게 가장 이상적이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시험에 대비한다는 것은 기준이 국사교과서라는 것인데, 내가 생각하는 국사교과서는 60%이상이 거짓말이고 엉터리다. 그런데 그걸 강의하라니. 어불성설이다. 교양에서는 국사교과서는 대부분 엉터리라고 말하고 전공에서는 국사교과서는 반드시 외워야 한다고 말한다면 난 뭐가 될까. 결국 현실에 영합하는 강의가 되는 것은 아닐까. 그건 내 강의에 대한 신뢰의 문제가 될 수도 있고 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내 뜻대로 한다면 문제는 이제 학생들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다. 시험용 국사와 대학의 역사학은 다르다는 것을. 그리고 중요한 것은 역사적 상상력이라는 것을. 알까? 학생들은? 정말 궁금하다.

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