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차-만들어진 전통과 단군

건양대강의/2009.1학기 2009. 3. 15. 00:44 Posted by 아현(我峴)
전통은 무구한 세월을 이겨내 온 관습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 과거의 연속성을 어느정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가요. 그리고 그것은 어느정도 순수(?)했을지 한번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체로 "만들어진" 전통들은 대체로 과거와의 연속성을 인위적으로 내세우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와 같은 이유에서 이른바 전통적 사회들을 지배해 온 관습과도 구분해야 합니다.

만들어진 전통들은 과거에 그 준거를 가지고 있음으로써 다만 그것이 반복되는 것 만으로도 공식화되고 의례화되는 과정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과거의 어느 시점에 있었던 사실을 오늘에 꺼 내어 보아 그것을 확대 재생산하는 과정에서 매년 반복하고 또한 기관에서 그것을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다루어서 마치 옛부터 내려온 의례로 포장하는 과정을 지칭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만들어진" 혹은 "날조된" 전통들은 진정한 전통들이 보여주었던 내구성이나 적응력과 혼동해서은 안됩니다.이는 낡은 관행에서도 마찬가지인데, 관행의 경우 특정하고 강한 구속력을 갖는 사회적인 것들인데 비하여 만들어진 전통은 주입하는 집단적 가치와 권리, 의무 즉 애국주의, 충성, 사명, 단결심 등의 불특정하고 모호한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만들어진 전통이라는 개념은 서양에서 먼저 쓰여지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스코틀랜드 고지대의 전통인 킬트(kilt)를 들어보겠습니다. 킬트는 각 씨족을 표시하는 색깔과 격자무늬로 된 천을 짠 옷을 말합니다. 이 옷이 스코틀랜드 민족 전체에 퍼지게 된 것은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의 일이었습니다. 그 과정은 이러합니다. 고지대 스코틀랜드는 본래 아일랜드의 영향 아래 있었는데 이 때 아일랜드에 대한 문화적 반란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고대적이고 독창적이며 특정적인 것으로 제시된 새로운 고지대 전통들이 인위적으로 창출되기 시작합니다. 만들어진 새로운 전통들이 독자적인 역사를 따로 갖고 있던 저지대 스코틀랜드에 소개되고 재차 적응과정이 이루어지면서 스코틀랜드 전체의 전통이 됩니다.(스코틀랜드는 고지대의 서부와 저지대의 동부가 본래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통이 창출되는 주요 형태는 주로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관심 때문입니다. 특히 공교육에서 그 특징이 잘 드러납니다. 사람들을 특정 나라의 시민으로 만들거나, 농부들을 프랑스인으로 만들거나 "이탈리아를 만들었으니 이제 이탈리아인을 만들 차례다"라고 한 다젤리오의 말과 같은 것들이 그것입니다. 초등교육의 발전은 모든 사람들은 프랑스 공화주의자로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또한 공적 의례의 발명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프랑스의 바스티유 함락 기념일이나, 독일의 마르세유에서의 독일제국대관식은 각기 자체의 국가 이미지와 애향심을 고취시킬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며, 공공 기념의 대량생산 또한 그와 같은 기능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어떨까요. 멀리 갈 것 없이 단군에서 그 단추를 열어보고자 합니다. 한국인들은 왜 그렇게 단군에 관심이 많을까. 우선 그 기원은 민족주의에서 찾는 것이 순서일 것입니다. 단군은 민족적 독자성과 유구성 및 동원성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에 당연히 몇천만의 동포, 한겨레, 한핏줄같은 용어들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단군은 민족적 정체성과 저항 의식의 상징이기에 더더욱 민족주의를 전개해야 했던 일제시대에는 유용한 용어였기에 편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단군은 바로 그 지점에서 하나의 전통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단군이 나타나게 된 것은 우리나라가 어려웠던 시기였습니다. 단군이 최초로 등장하는 삼국유사가 만들어진 시기와 단군이 보편적으로 개념화되기 시작한 시기는 모두 국란으로 혼란에 있었던 시기입니다. 단결심과 애국심을 강조하기에 단군은 가장 좋은 매개체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늘 주변에서 보아왔던 전통이라는 것을 되집어보면 그 근원이 채 100년에서 200년 안팎인 것이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면을 들여다 보면 전통이 만들어지게 된 환경과 경위가 자세히 밝혀지기도 합니다. 역사를 이해하고 해석한다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이 제대로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좀더 진실에 가깝게 다가가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 본 글은 건양대 교양과목 "한국의전통문화" 2주차 강의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