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위안대(特殊慰安隊)

사료(史料) 2011. 4. 6. 00:19 Posted by 아현(我峴)
<六·二五事變 後方戰史>
제1편 인사
 제3장 개인봉사관리 및 업무실적 상황
  제1절 개인봉사상황
   제3항 특별위안활동사항
    2. 특수위안대(特殊慰安隊)

표면화한 사리만을 가지고 간단히 국가시책에 역행하는 모순된 활동이라고 단안(斷案)하면 별문제이겠지만 실질적으로 사기앙양(士氣昻揚)은 물론 전쟁사실에 부수하는 불선(不尠)한 폐단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장기간 교대없는 전투로 인하여 후방내왕이 없으니만치 이성(異性)에 대한 동경(憧憬)에서 야기되는 생리작용(生理作用)으로 인하여 성격의 변화 등으로 우울증 및 기타 지장을 초래함을 예방하기 위하여 본 특수위안대를 설치하게 되었다.

상기한 바와 같은 목적으로 설치를 보게 된 본대는 서울 지구에 3개 소대 그리고 강릉 지구에 1개 소대를 각각 설치하게 되었는데 서울 지구에는 제1소대(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4가 148번지), 제2소대(서울특별시 중구 초동 105번지), 제3소대(서울특별시 성동구 신당동 236번지), 강릉지구에는 제1소대(강릉군 성덕면 노암리)에 각각 설치하고 위안부(慰安婦)는 서울지구 제1소대에 19명, 서울 제2소대에는 31명, 제3소대에는 8명, 강릉 제1소대에는 21명으로 계(計) 79명으로서 운영 중 일선부대의 요청에 의하여 출동위안出動慰安)을 행하며 소재지에서도 출입하는 장병에 대하여 위안행위에 당하였다. 그런데 그 외에도 춘천, 원주, 속초 등지에도 설치한 바 있다. 한편 위안부는 일주일에 2회 군무관의 협조로 군의관의 엄격한 검진을 받고 성병(性病)에 대하여는 철저한 대책을 강구하였다.

여기에 여사(如斯)한 활동의 단기 4285년의 실적을 일람하면 별포와 같았는데(부표 제3호 참조) 동란 중 활동상황을 연도별로 보면 대차 없었으며 전쟁행위와 더불어 불가분의 관계를 갖인 것이라고 아니볼 수 없다.

그러나 휴전에 따라 이러한 시설의 설치목적이 해소됨에 이르러 공창폐지의 조류에 순명(順名)하여 단기 4287년 3월에 이를 일제히 폐쇄하였다.

부표 제3호 - 특수 위안대 실적 통계표



* 출처 :  <六·二五事變 後方戰史> 人事篇 , 陸軍本部 編, 1956(국회도서관 소장, 951.74 ㅇ439ㅇ), 148~150쪽.

* 한마디로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에서 위안부를 설치했다는 말이다....

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