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차-역사는 왜 배우는가

건양대강의/2009.1학기 2009. 3. 14. 23:20 Posted by 아현(我峴)
지난 시간에는 역사가 가지는 정치적 함의를 이야기 하였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역사의 효용성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역사의 정치성과 효용성이라는 말이 어렵게 들리겠지만, 쉽게 말하면 역사의 정치성이란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에 대한 답변이고, 역사의 효용성은 "역사는 왜 배우는가"에 대한 진술입니다. 우리는 왜 역사를 배워야 할까요. 문학과 역사, 철학 중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은 제가 보기에 역사인 듯 합니다. 철학을 굳이 내세우지는 않죠. 그 이유는 뭘까요.

중고등학교 때 "국사"를 배운다고 앞 시간에서 설명했습니다. 그 국사는 국가의 정치성이 담겨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때 배우는 역사의 이유는 간단해집니다. 국가가 국민성 내지는 국민의식을 중고등학교 학생에게 심어주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념적인 차원에서 그렇다는 것이죠. 현실적인 문제로 넘어가면 역사를 익혀야 하는 이유는 달라집니다. 여느 과목과 마찬가지로 수능 공부를 위한, 내신 점수를 위한 대표적인 암기과목으로 상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때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는 단지 시험을 잘 보기 위한 정도에 불과할 것입니다. 암기하는 것 이외에는 몇몇 학생들의 호기심 정도로 넘어가는 것이 중등과정 역사과목의 존재이유일 것입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오면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가 달라집니다. 대학 교양과목의 역사는 배워도 되고 배우지 않아도 되는 과목이 됩니다. 중등과정에서 역사는 필수였지만, 대학에 오면 역사는 더이상 필수 과정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국가에서도 관여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역사공부의 필요성은 달라지게 됩니다. 그 필요성 뿐만 아니라 공부 내용도 달라집니다. 그 동안 암기만 해 오던 방식에서 생각하는 교육으로 바뀝니다. 단적으로 시험 방식에서 객관식이나 단답식으로 진행되던 것이 주관식 문제나 논술식으로 전환됩니다.(객관식이 암기 테스트인데 비해, 주관식이 논리능력 테스트임을 감안하면 그 전환이 가지는 의미는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학 교양과정으로서의 역사는 과연 무엇일까요. 이를 알기 위해서는 역사는 어떠한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역사는 역사적 사실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역사적 사실은 과거에 바탕을 둡니다. 그러나 그 때의 사실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과거의 사실로써 과거에 실제로 있었던 그대로의 사실을 말합니다. 진실이자 진리인 사실입니다. 다른 하나는 사료로서의 사실로 과거에 있었던 사실이 그대로 흔적으로 남아 현재에 볼 수 있는 사실입니다. 물론 그것은 과거의 흔적임으로 과거의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구성할 수 있는 바탕이 됩니다. 문제는 과연 그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제대로 과거를 구성할 수 있는 사료인지를 판별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역사적 사실로 사료로서의 사실을 역사가가 재구성하여 만들어낸 사실(史實)입니다. 앞의 사실이 事實이라는 한자로 쓰는 것과 비교한다면 역사가 만들어낸 역사적 사실(史實)은 과거에 있는 그대로의 사실은 아니지만 그것에 다가가고자 하는 노력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죠.

사실을 구성하는 세 가지 의미를 잘 구분해야 대학 교양과정으로서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며칠 전에 정조의 어찰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어찰은 당시 재상이었던 심환지에게 보냈던 것으로 정조의 사적인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모두 사료적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알고 있던 역사적 사실은 정조가 심환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정조의 독살설 배후로 심환지를 지목하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 어찰의 발견으로 그러한 역사적 사실은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주었습니다. 또한 정조의 탕평정책에 대한 의의의 수정도 불가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언론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대부분 정조의 독살 여부에 관심이 모아져 있었습니다. 소위 진실게임이었죠. 그러나 역사는 결코 진실게임을 하기에는 그 룰이 명확한 학문은 아닙니다. 다른 사료가 나오면 다른 해석이 가능한 열려있는 학문이기 때문이죠. 실록이나 승정원일기를 통해서는 정조와 심환지가 나쁘게 그려지지만, 어찰을 통해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의 구분은 역사를 다양하게 인식하고 해석할 수 있게끔 해줍니다. 국사에서는 정해진 역사적 해석을 통해서 그것을 암기하는 데에 주력해 왔지만, 실제 교양으로서의 역사에서는 그러한 이유가 없어집니다.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면 그 의미는 여러가지로 늘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위 정조의 어찰은 그러한 면들을 보여줍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진실게임 여부로 여론을 몰고간 측면이 강하게 나타났지만, 그것이 보여준 것은 바로 해석의 다양성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정조의 어찰 앞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입니다. "정조는 어떠한 방식으로 정치를 펴 나아갔는가, 공명정대한 탕평을 통한 것인가, 아니면 비밀 어찰을 통한 심리전인가", "정조와 심하게 부딪혔던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의 의미는 무엇인가, 동정표를 얻고자 함인가, 고도의 심리를 이용한 것인가", "심환지는 왜 정조가 보낸 어찰을 불태우지 않았을까, 후에 역사로 남기기 위함인가" 등등.

하나의 사료를 보고 그것을 생각하는 것은 그것은 읽는 사람 나름입니다. 다만 교양과정으로서의 역사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것을 사고하고 통찰하며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일 것입니다. 하나의 사실은 하나의 해석만을 가지지 않으며 자신의 주관적인 관점에 따라서 가장 합리적인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그것은 당연히 개개인 마다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혹 신문기사 하나를 읽는 것도 이와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의 기사를 통해 그것은 옳게 받아들이는 사람과 그르게 받아들이는 사람, 그 기사의 이면을 생각하거나 정치성을 염두에 두는 사람 등 다양합니다. 역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역사는 배우는 이유 또한 거기에 있는 것이죠.

* 본 글은 건양대 교양과목인 "한국사새로일기"와 "한국의전통문화" 2주차 강의 내용입니다.

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