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차-누구를 위한 역사인가

건양대강의/2009.1학기 2009. 3. 14. 23:19 Posted by 아현(我峴)
그 동안 고등학교에서 가르친 역사는 "국사(國史)"였습니다. <국사>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만든 역사교과서로 본 위원회는 국가기관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국사>는 국가에서 만든 공식적인 역사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사>와는 별개로 각 출판사에서 만든 <한국근현대사>라고 하는 역사교과서가 있습니다. 이 책은 <국사>와는 달리 여러 출판사에서 각기 역사교재를 만든 것으로 교과부의 검인정 과정을 거쳐서 교과서로 인정을 받은 역사책입니다. 그런데 한쪽에서는 "국사"라고 하는 반면 다른 한 쪽에서는 "한국사"라고 했을까요? 국사와 한국사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실태를 주목하지만, 일본이 한국보다 앞서가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자국의 역사를 바라보는 인식입니다. 일본의 중등과정 역사교과서는 <일본사>라고 합니다. 그들은 자국의 역사를 "국사"라고 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국사와 한국사의 차이는 바로 역사를 바라보는 인식의 차이에서 드러납니다. 국사에서는 국가가 정한 "하나의 역사"를 지향합니다. <국사> 안에서는 획일적으로 정해진 하나의 한국 역사만 있을 따릅니다. 그러나 한국사에서는 "여러 개의 역사"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는 6~7종에 이르는 것이고 독자나 학생들은 그것들을 읽고 그 중에서 자신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선택하면 됩니다. 역사를 읽을 수 있는 권리가 주어져 있는 것이죠. 그러나 <국사>에서는 그러한 최소한의 권리조차 주지 않습니다. 국가에서 만들어낸 하나의 역사만을 강요하게 되는 것이죠.

그럼 하나의 역사만을 강요하게 되는 문제점은 무엇일까요. 문제는 <국사>의 서술체계에 있습니다. 하나의 역사를 지향하다 보면 하나의 논제만을 언급하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가장 주된 주제는 바로 민족입니다. <국사>에서는 민족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그것만이 오로지 한국의 역사인 것처럼 서술하게 됩니다.

동학농민혁명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농민들은 조선정부에 대항하여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조선정부는 농민을 막지 못하여 결국 일본군을 끌어들이고 일본군의 개입으로 자연스럽게 청군이 조선에 들어오게 됩니다. 결국 농민 대 조선정부+일본군+청군의 대결구도가 만들어집니다. 그럼 당시 양반은 어느 쪽에 있었을까요. 당연히 조선정부의 편에 서서 농민을 진압하는 데 찬성하였습니다. 그러면 민족의 시각에서 양반들의 행동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국사> 서술체계의 문제점은 획일적인 역사적 사실만 드러낸다는 것에서도 나타납니다. 최근 미륵사지 석탑에서 미륵사의 창건자를 알려주는 명문이 출토되었습니다. 그는 사택씨의 딸로써 그동안 우리가 생각해 온 역사와는 전혀 다른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동안 미륵사는 서동요에 나오는 주인공인 선화공주가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 서동요 설화는 <삼국유사>에 기반하고 있었죠. 항간에서는 서동요의 사실여부를 두고 갑론을박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명문이 출토되었다고 서동요는 사실이 아니고 <삼국유사>는 믿을 만한 기록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요.

결국 역사는 그것을 읽는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의 사실이 존재한다고 할때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는가는 받아들이는 본인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사>의 서술안에서는 그러한 것들을 용납하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모든 역사는 진실게임으로 끝나고 그 이상 발전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동학농민전쟁에서 민족에 대한 인식을 배제한다면 전쟁의 역사적 평가는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서동요 설화에 대한 생각도 사실 여부를 떠나서 왜 이러한 설화가 만들어졌는지 이해하고 그 배경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사실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역사는 민족을 위한 것도 국가를 위한 것도 아닙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곧 나의 역사일 따름입니다. 그 이상 이하도 아닙니다. 역사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라는 것 또한 중요한 사실입니다. History가 아니라 history인 것이죠. 그리고 서로 간의 건전한 비판과 비평을 통해서 역사에 대한 인식 또한 발전하고 넓어지는 것입니다.

* 본 글은 건양대 교양강의인 "한국사새로읽기"와 "한국의전통문화" 1주차 강의내용입니다.

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