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오군 연구

사편(史片)/조선시대 2011. 1. 9. 15:35 Posted by 아현(我峴)

속오군 연구(차문섭, <조선시대군제연구>, 단대출판부, 1975)

1. 설치연혁
  * 타개책 : 중앙에 있어서의 훈련도감의 성립, 지방에 있어서의 속오군의 성립
  * 속오군의 성립 : 선조27년을 전후하여 설치되기 시작한 것만은 사실은 듯
  * 거의 유일한 지방군으로 파악하는 속오군도 처음부터 속오군이란 고유명사로 불려진 것이 아니라 속오지법에 의하여 편성된 이른바 속오군인 보통명사로 불려지다가 그 명칭이 점차 고유화한 것
  * 우선 진관체제를 재정비하는 것이 급선무로 파악
  * 훈련도감의 연병책이 마련되고 또한 이것을 기점으로 하여 지방군의 제도적인 조직이 전국화해 간 것으로 생각
  * 유성룡은 <전수기의>를 올려 지방군을 재건하되 속오법에 의할 것을 건의 : 지방군의 조직을 그 바탕은 진고나제를 두되 조직편제는 속오법에 의하고 그 훈련은 삼수기에다 두려던 것
  * 당혹한 결과 : 사실상 체제는 진관체제이면서 군사지휘권이나 조련권은 또 중앙에서 장악하고 있어 지방관은 때로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지 몰라 속오군의 조직은 지지부진할 수 밖에 없었음
  * 지방군의 정비 : 황해도부터
  * 선조28년 10월 경기, 황해, 평안, 함경의 4도 도체찰사였으며 지방군의 속오활르 강력히 주장했던 유성룡에 의하여 이 지방의 조직은 급속도로 진전->鍊兵規式(사목)
  * 선조29년말에는 진관중심의 속오군 조직이 거의 완성

2. 군제와 군액
  * 중앙에서의 훈련도감이나 지방에서의 속오군이나를 막론하고 재래 사수 중심의 군대편제에서 새로운 포살수 중심의 군대편제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 당시 훈련의 책임을 지고 영장과 파총 등이 수령의 겸직이 아니라 하더라도 당하의 문관이나 무관을 임명하여 수령지취하에 그것도 무보수로 봉사하는 것으로 속오군의 조직자체가 임시성을 면하고 있지 못하였음
  *  유성룡은 훈련명령의 계통을 관찰사-감병사(순찰사)-진관절제사-동첨도위-초관-기대총의 선에서 속오군도 조정하려고 한 것 같다
  * 효종사망 이후의 속오군의 편제체계는 사실상 거의 마비상태에 빠짐
  * 효종 이후의 속오군은 영장제도의 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고 왕성 중심의 군사체제를 지향하고 또 국가재정의 보전을 위한 수미·포가 일반화함으로서 거의 그 구실을 다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 영장은 속오군, 감병사가 아병, 이노대 증의 다기한 군사체제를 발생시키기도 했음
  * 빈잔무의, 명존실무의 속오군의 조직이 다시 재정비된 것은 영조 5년→영조6년 9월에 발표된 속오절목 20조 제정.
  * 이 사목에서 중요한 것은 속오급보법을 적용, 속오군에 대한 잡역촉감, 세초법을 지양하고 朔抄法으로 고쳐 철저한 수괄의 단행, 병기관리의 철저.
  * 속오군 자체가 지방군의 핵심이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이것이 지방군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3. 신분
  * 속오군은 양민으로 편성되는 정군이 조선조 후기에 와서 거의 수포군화하게 됨으로서 지방군의 핵심을 이루기는 하나 상대적으로 이들은 거의가 천예군으로 파악
  * 임란을 계기로 전문화하였던 포수와 살수는 거의 奴가 점유하고 있으며 사수의 경우에는 거의 전부가 양민으로 채워짐
  * 속오군은 한편으로 본역(신역과 신공)을 지고 또 한편으로는 속오군에 편입됨으로써 오히려 일신양역의 폐단을 발생케 한느 불합리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
  * 속오군이 천예로서만 충정되기 시작한 것은 영조12년인 18세기 초기부터였다는 것이 명백

4. 대우
  * 이들에 대한 어떠한 대우를 약속하지 않았고, 아무런 경제적 대책을 마련해 주지 않음
  * 영장절목 가운데 속오군의 대우에 대한 조목
  * 단한한 양정은 호보를 막론하고 정군역과 속오역의 겸역을, 천예들은 신역과 속오역의 겸역을 더 가중하게 지은 결과를 초래.
  * 군비확충에 몰두했던 효종대에 와서도 그대로 밀고 나가지마는 속오군에 관한 한 그 대우가 많이 개선되기 시작
  * 경상도 속오에 대한 봉족정급절목 반포 : 경상도 속오군에 대한 봉족 정급절목은 그 뜻이 어디에 있었든 간에 여러가지 면에서 반발을 불러 일으킴
  * 효종은 마침내 삼남속오군에 대한 급복, 면역, 견역을 승인
  * 속종초에는 경상 속오군에게 주어졌던 보인이 이미 없어지고 있는 사실을 알 수 있고, 또 있었다 하더라도 이 때에는 그것이 유명무실화했음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
  * 급복의 규정마저도 시행된지 불과 30여년 만에 혁파되고 말아 지방군의 핵심인 속오군은 사실상 아무런 보장도 받을 수 없는 유명무실의 군대로 전락
  * 이인좌의 난이 자극이 되어 유명무실했던 속오군의 재편제가 영조6년에 이루어짐, 속오사목에 그 대우에 관한 부분을 기록함
  * 속오군의 대우가 이후 전국적으로 시행되었느냐 하는데는 의문이 많음

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