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제국의 팽창과 축소

사편(史片)/그외 2011. 1. 5. 23:15 Posted by 아현(我峴)

중화제국의 팽창과 축소:그 이념과 실제(이성규, <역사학보> 186, 2005)

1. 정통과 제국의 공간
  * 중국은 단순한 영토의 개념만은 아니었고, 종족(민족)적 개념과 문화적 개념이 중첩된 복합 개념
  * 秦 이후 왕조의 흥망 繼起를 五德終始說로 설명하기 시작
  * 五德終始說은 왕조의 흥망을 五行 순환의 우주론으로 현 왕조의 정당성을 합리화시킨 이론(왕조의 치란과 정치의 득실에 의해서 그 장단이 좌우)
  * 중화민족은 중화민국의 국민인 한족과 55개 소수민족 전체를 하나의 민족으로 설정한 것인데, 그 개념의 타당성 여부를 일단 차치하면, 이 개념이 인정되는 한 소수 민족의 독립이나 자결, 그리고 이에 따른 영토의 분할 주장 등은 모두 논리상 불가능

2. 중국과 2개의 변경
  * 중국와 夷狄은 모두 단일한 개념이 아니었고, 공간적(1), 종족적(2), 문화적(3) 개념이 중첩된 복합개념 
  * 역대 왕조의 실제 광협의 변화는 이 外境이 내외로 팽창과 축소를 거듭한 과정으로 이해해도 대과는 없는 것 같다. 역대 왕조는 자신이 설정한 외경에 장성 및 關과 塞을 설치하고 대단히 엄격히 통제하고 방어하였다.
  * 內境은 중원 왕조가 중국(1)을 동심원적으로 확대하면서 편입된 이적을 중국(2)와 중국(3)을 흡수 통합하지 못한 채, 遠方에 植民 거점을 건설하는 식으로 外境을 먼저 확보한 때문에 형성된 것
  * 역대 중국인들은 구양수와는 달리 이념적 정통 중화제국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은 시기가 많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였고, 결국 중원을 통치한 현실 제국에 중화제국의 지위를 부여하였다.

3. 책봉과 천하의 완성
  * 봉건 역시 황제지배의 중요한 형식의 하나임을 선언한 의미가 있었다. 황제가 군현제를 관철할 수 없는 이적의 세계에 책봉체제로 형식적 지배의 외연을 확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
  * 중국은 책봉국의 군왕들을 外臣으로 간주
  * 唐新羅國, 有唐新羅國 : 피책봉국 신라가 책봉국 당의 일부란 인식을 반영한 것처럼 보임, 당대의 신라국이란 의미로 해석해도 무난
  * (당이 망한 이후에도) 그들 중 일부가 사용한 有唐新羅國은 당 문화에 대한 찬탄과 동경, 그리고 강한문화적 귀속 의식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없음
  * 신라왕이 後梁의 연호를 사용하면서 사라진 唐을 의식하여 표기한 有唐新羅國은 "당 제국의 영역 신라"라는 의미로는 해석되지 않음, 그러므로 이것을 盛唐문화에 대한 강한 참여의식과 귀속 의식의 상징으로 이해
  * 지명, 족명, 국명에 詞頭 "有"를 冠하는 것은 선진 시대 이래의 관행이며, 有夏, 有殷, 有周, 有漢, 有晉, 有宋, 有元, 有明 등의 용례도 쉽게 찾을 수 있다.
  * 친명파가 건국한 조선이 초기부터 "有明朝鮮國"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친명의 선언으로 이해, 그러나 유명조선국은 국내 의례용에 불과했음.
  * "有+중국왕조명+한국왕조명"이 상황에 따라 국내의 경쟁 세력을 제압하기 수단 내지는 문화적 정치적 상국을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형식이었음.

4. 정복왕조의 正史와 外境의 확대
  *

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