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6세기 호적과 족보의 계보형태와 그 특성(손병규, <대동문화연구> 71, 2010)

1. 머리말
  * 조선시대 족보를 "부계혈연집단의 결집을 강화하기 위한 물적 근거의 하나"로 보는 것이 지배적 인식
  * 도이힐러 - 족보의 변화 이전 시기를 쌍계적 양상을 보이는 친족중심적 전통사회로 이해, 다만 유교적 부계사회로의 전환 이후에도 신분적 정통성이 여전히 부모 쌍계적인 것으로 존속한다고 이해.
  * 미야지마 히로시  - 17세기를 전후하는 사회관계의 연속성을 지적, 초기족보는 딸의 계보가 긴 반면에 후기족보는 딸의 계보가 축소되고 기재를 안하던 배우자의 아버지를 기재하기 시작.
  * 손병규 - 족보의 편찬 이유를 조선왕조 신분제의 유동성에서 찾음. 상층계급은 국가의 집권적 신분정책에 대응하면서 민간차원에서 족보 편찬을 시작, 혼인관계에 기초한 신분적 정통성의 증명을 목적으로 함
  * 계보의 형태가 조선후기에도 사라지지 않고 개인이나 혈연집단이 계보를 표현하기 위한 어떠한 필요성에서 호적의 사조가 사용되고 그 요구가 지속되는 사회구조적 특성은 무엇인지..

2. 13~15세기 호적에 기록된 계보
  * 부부의 사조기록은 동일한 신분 내에서 혼인했음을 나타내며 그것 또한 신분을 증명하는 조건
  * 14세기 후반에서 15세기 초에 이르도록 이렇게 많은 선조들의 계보를 호적에 기재하는 현상이 나타난 이유 - 개별가족에 이르는 신분 내력을 과시하고 그러한 가족 사이에서 혼인이 이루어졌음을 밝히기 위한 것

3. 15세기 족보와 여러 형태의 계보
  * 조선왕조는 호적을 기재하는데 기본의 귀족층에게 더 이상 특수한 계보기록을 허락하지 않고 서민과 기본적으로 동일한 양식으로 기록하도록 하여 차별을 없앴다. 국가가 신분제를 개혁하여 특권층에 대해 더 이상 정치, 경제적 보장을 하지 않게 된 결과
  * 개인적으로 자신들의 조상들에 관한 기록을 남기어 자신의 가족이 사회적으로 상층계급임을 증명하고자 하는 노력은 오히려 더욱 강해졌다.
  * 민간에서는 선조로부터 자신에 이르기까지 단선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흔히 世系라 부른다.
  * 부계 남성의 단선적 계보만을 가리켜 家牒, 家乘이라고 함
  * <안동권씨성화보>에는 혼인한 딸의 가계에 대한 기록은 상당량을 차지하지만, 반대로 안동권씨 남성들의 배우자 가계에 대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배우자 가계의 필요성이 없었음.

4. 1597년 편찬 <사성강목>의 계보형태
  * 15세기 민간에서 족보가 편찬되기 시작한 것은 그 때가 호적에 계보를 길게 기록하지 못하고, 양반과 같은 상층계급에 대한 신분적 보장도 없어지는 시기라는 점과 관련
  * <안동권씨성화보>는 안동에서 간행되었지만, 수록인문들은 주로 중외관인들, 즉 중앙정계에 깊은 연고를 가진 세력들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졌다는 점.
  * <안동권씨성화보>를 위시한 17세기 이전의 족보 가운데 지방레벨의 족보는 어떠한 형태를 가지는가
  * <사성강목>의 계보형태에서 주목되는 것은
    - 첫째로 4성씨의 관계가 호적의 사조형식에 근거하고 족보 편찬자의 조부, 조모, 외조부, 외조모에 이르기까지 각 성씨의 직계 선조들의 배우자의 사조 정보가 기재된다는 점
    - 두번째로 각 성씨의 부계남성 직계 계보에는 방계 계보가 첨가되는데 딸의 딸로도 3~4대에 걸쳐 기록된다는 점
  * 선조들의 호적에 근거하는 처의 사조가 기재되고 딸의 시집의 계보가 좀 더 길게 나열되었다는 것은 당시의 족보들이 부계적 집단을 목적으로 편찬된 것이 아니라 혼인네트워크를 증명하고자 편찬된 것임을 의미
  * <안동권씨성화보>와 <사성강목>의 계보형식을 모두 갖추고 있는 족보를 소개하면 1606년에 하혼이 편찬한 <진양하씨세보>가 그것.

5. 맺음말
  * 17세기 이후의 족보에도 부계혈연집단의 결집을 강화하기보다는 계층적 결집을 위한 목적을 확인
    - 첫째로 부계남성 중심의 족보에도 신분적 상승을 기회로 새로운 가계가 방계형제의 분파로 편입되어 가는 한편, 서파를 비롯한 타계층이 배제되는 신분적 차별이 나타난다는 것 : 1654년의 <안동권씨 갑오보> 범례
    - 둘째로 하나의 족보에 여러 성씨의 가계를 망라적으로 담고자 하는 계보형태는 17세기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나타난다는 것 : <안동권씨내외보>
    - 각 가계마다 적통으로 검증된 부계남성의 계보를 부계적 친족체계를 형성하는 근거로 삼으면서 그것이 혼인네트워크의 형성에 필연적임을 보여주는 족보가 현존한다는 것 : 강봉해의 <춘파심역>
    -  지역사회의 지배적 계층이었던 인물들이 각자의 성씨별 계보를 모아놓은 형태의 전통적 족보가 20세기에 들어서도 편찬된다는 것 : 1917년 편찬된 <하동향안세계원류>

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