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주차 강의(한국사새로읽기)

건양대강의/2010.2학기 2010. 11. 15. 19:35 Posted by 아현(我峴)

11주차 강의(한국사새로읽기)

* 시간과 공간 속의 역사에 대한 이해

역사를 어떻게 쓸 것인가. 이 주제가 이번주 강의 내용입니다. 역사에서는 자료를 이해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역사와 문학의 차이는 과거에 대한 근거 유무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자료를 이해할 때 그 판단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느냐 아니면 주관적으로 보아야 하느냐의 문제가 있습니다. 역사를 쓸 때 가장 큰 고민은 바로 역사의 객관성과 주관성입니다. 역사의 객관성은 내가 말하고자 하는 사실에 대해서 논리적인 근거를 들어서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의 자료가 있으면 그 자료의 내용을 분석하여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뜻합니다. 역사의 주관성은 어느 하나의 자료를 통해서 그것을 가지고 유추를 통해 자료를 너머서는 사실을 찾아내는 과정을 말하는데, 그 과정에서는 역사가의 일정한 상상을 포함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자료에서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못하는 다른 사실들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거라고 생각은 드는데 자료로 설명이 잘 되지 못하는 것들을 말합니다.

사례를 들어 보겠습니다. 위안부 문제를 들면 한국에서는 위안부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일본에서는 위안부가 없었다고 주장합니다. 한국에서는 위안부 할머니 들의 증언을 통해서 그 사실의 증거로 삼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일본군에서 위안부를 설치했다는 증거문서가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거로 삼고 있습니다. 역사의 객관성이라는 문제를 가지고 본다면 두 주장 모두 논리적인 설명이 됩니다. 특별히 문제될 것이 없죠. 그런데 왜 역사를 설명하는 방식은 다를까요. 그 논리에 대한 역사적 설명, 즉 역사의 주관성 부분에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과거를 다르게 보게 됩니다.

독도 문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국은 독도가 한국의 영토라고 하고, 일본은 다케시마가 일본의 영토라고 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독도가 한국령이라고 표기된 지도를 통해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고, 일본은 다케시마가 일본령이라고 표기된 지도를 통해서 자신의 주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모두 둘다 사실이죠. 왜냐하면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고 있으니까요. 이 부분까지가 역사의 객관성입니다. 문제는 설명방식이죠. 각기 자기 영토의 역사성을 주장합니다. 이 부분이 역사의 주관성에 해당됩니다. 논리적인 부분은 같지만, 추상적인 부분은 제각각인 상태, 이게 바로 역사를 기술하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자료에 대한 비판입니다. (역사용어로는 사료비판이라고 합니다.) 증거자료를 비판하면 좀더 정확한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정조의 역사는 정조실록과 같은 기록을 통해서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작년 발견된 정조의 편지를 통해서 우리가 알고 있던 정조의 모습이 다르게 비추어지고 있습니다. 서로 상반되는 설명이 가능한데, 어느 자료가 더 객관적이고 신빙성이 있을까요. 당연히 정조의 편지가 더 객관적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편지는 정조 자신이 직접 쓴 것이지만, 정조실록은 정조가 죽은 이후에 신하들이 지은 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정조의 역사를 쓴다면 편지가 우선시되고, 정조실록은 부차적인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다음의 편지가 있다고 합시다. <박씨가....3냥만 빌려줘....이씨에게>라고 하는 편지가 있다고 생각합시다. 위 편지 내용에 따르면 박씨는 돈이 모자라 이씨에게 3냥을 빌리고자 합니다. 그렇죠? 근데 실제로 이씨는 박씨에게 3냥을 주었을까요? 그건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은 단지 이 편지가 현재 남아 있다는 사실 뿐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이 편지가 실제로 이씨에게 전달된 것인지 알 수 없으며, 이 편지가 이씨에게 전달되었다고 하여도 돈은 박씨에게 주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박씨에게 돈을 빌려주었다고 해도 3냥이 아닌 1냥만 주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박씨가 일부러 있지도 않을 사실을 편지로 남겼을 수 있습니다. 모든 역사적 사실이 가능한데, 그렇게 설명할 수 있는 이유는 더이상 이 편지는 그러한 사실들을 우리에게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단지 편지만 남아 있을 따름입니다.

정조의 편지로 돌아가 보죠. 위의 내용에 따른다면, 정조의 편지로 정조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아마 편지만 가지고는 힘들 것입니다. 실제로 편지가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었는지 알 수 없고, 정조가 지시한 여러가지 일들을 편지를 받은 사람이 실제 실행했는지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 역사가 봉착한 문제는 여기까지입니다.

그래서 철학자인 자크 데리다는 "텍스트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유명한 명제를 남겼습니다. 텍스트는 현재 우리가 보는 편지(역사자료)죠. 편지에 있는 글 외에는 우리는 더이상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없기 때문이죠. 역사학 안에서는 이를 포스트모더니즘 문제라고 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역사학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심도있게 논의하고 있는 중입니다. 현재 역사학의 방법론이 여기까지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현재 만들어지고 있는 과정중에 있습니다.

역사의 정의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대화로 표현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는 시간의 개념만 설명해줄 뿐, 공간의 개념을 역사의 정의에 포함시키지 못합니다. 이번에는 두 개념이 어떻게 역사에서 중요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려 합니다.

역사 관련 기사의 보고서를 통해 많은 분들이 이 문제를 생각해 보셨으리라 봅니다. 동북공정에 대한 생각, 독도 문제에 대한 생각이 주된 초점이 됩니다. 그러나 이 두 문제를 네것과 내것으로 단순화시킬 수 있는 차원의 것이냐 하면 그것은 회의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문제의 논의를 역사 개념으로 접근해 봅시다. 중국의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신의 동북지방에 위치한 지역(한국에서 만주라고 하는 지역)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고구려와 발해라는 나라가 위치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 지역에서 오랫동안 나라를 건국하여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지역은 현재 중국에 속해 있기 때문에 당연히 중국역사의 일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한 그들의 역사는 지금 현재 뿐만 아니라 당시 중원에 자리잡고 있던 수-당나라와 일정한 관계를 맺고 있었고, 당나라의 지방정권으로까지 해석하고 있다. 그들은 결국 현재 중국국민의 시간적 연원보다 중국 영토의 공간적 개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공간의 역사를 지향한다.

반면 한국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고구려와 발해는 후대 고려로 흡수되었고, 고려는 다시 조선으로 그리고 그 조선은 현재 대한민국으로 이어지고 있다. 고려와 조선, 대한민국은 각기 그 전통성을 삼국의 고구려, 백제, 신라에 맞추고 있는 것이다. 공간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단지 그 지역에 살았던 백성들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시간의 역사를 지향한다.

그러나 문제를 대한민국 안으로 돌려보자. 대전이라는 행정구역이 만들어진 것은 100여 년에 불과하다. 일본인들이 경부선과 호남선 부설에 따라 거주구역을 대전역 중심으로 하게 되었고, 그것이 대전시의 시초가 된다. 그러므로 대전은 근대에 만들어진 식민도시에 해당한다. 그러면 조선시대 대전에 해당하는 지역은 어느 행정구역이었을까. 조선시대 이 지역은 공주목 소속으로 현재의 공주시 뿐만 아니라, 대전의 유성지역 일대와 서구, 중구, 동구 일부가 대부분 공주 행정구역 소속이었다.

그렇다면 대전의 역사를 기술할 때와 공주의 역사를 기술할 때에 이 지역의 조선시대 부분을 기술할 때 대전과 공주 중에 어느 쪽으로 넣어야 할까. 대전시에서 자신의 역사를 쓸때는 앞서 말한, 일본인이 아니라 구석기 시대 이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부터 시작을 한다. 물론 공주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조선시대 이 지역의 역사는 대전의 역사도 되고, 공주의 역사도 된다. 왜 같은 지역의 역사를 이 두 도시에서 모두 쓰고 있을까. 대전시의 경우에는 공간의 역사를 지향하고, 공주시의 경우에는 시간의 역사를 지향하기 때문에 그렇다. 대전시는 중국의 역사인식에, 공주시의 경우에는 한국의 역사인식에 대비된다고 할 수 있다. 모두 역사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둘다 맞을 수도 있고, 둘다 틀릴 수도 있다. 양비론 내지 양시론으로 흘러갈 우려가 있지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역사의 개념에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 모두 포함되기 때문이다. 시간만의 역사를 쓸 수도 있고, 공간만의 역사를 쓸 수도 있다. 그래서 역사는 주관적이며, 서술적이게 된다. 보는 주체에 따라 달라지는게 바로 역사의 해석이다.

* 추후 수정할 예정.

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