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주차 강의(한국사새로읽기)

건양대강의/2010.2학기 2010. 11. 2. 23:43 Posted by 아현(我峴)

10주차 강의(한국사새로읽기)

* 지식채널e

- 233 : 한강의 남쪽 1부-땅의 역사
- 237 : 한강의 남쪽 2부-배움의 역사

* 수도권 영역 확장에 대한 설명과 그 지역에 살던 사람들의 이주에 대한 설명
* 대한민국 경제정책과 교육문제의 관련성에 대한 설명
* 대한민국 현대사를 정치와 경제만 가르치고, 사회와 문화를 가르치지 않는 이유에 대한 설명
* 경상도 지역성의 문제(TK와 PK)에 대한 설명, 공주 사람들의 정치성에 대한 설명
* "지적 고민"의 의미에 대한 설명 - 대학은 인생에서 마지막 배움의 기회, 그러므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고민을 연습할 필요성이 생김, 지적고민은 바로 그러한 방법의 연습

* 강의 - 역사의 객관성 문제

자료를 역사적 사실로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역사를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에 앞서서 "어떻게"를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는 약간의 철학적인 고민이 필요합니다. 역사는 인문학에 포함이 됩니다. 문학과 더불어 인간에 대한 학문이기 때문인데, 그러한 이유로 역사는 주관적인 학문적 경향성을 가집니다. 그러나 역사는 그와는 반대로 객관적인 학문체계이기도 합니다. 문학과는 다르게 자료에 대한 뒷받침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그렇지 않으면 단지 역사소설에 머물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바로 역사는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역사는 문학인가 과학인가. 역사는 객관적인가, 주관적인가.

객관성에 대한 문제는 서양의 과학사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초기 수학은 자연을 이해하는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공식을 상당히 많이 발견하게 되고 그것은 수학의 초기 발전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유클리드 기하학 같은 것들은 오래전부터 정립이 되었던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습니다. 반면에 동양은 그렇지 않았죠. 중국의 오래던 산수책이었던 <구장산술>만 보더라도 원리를 찾기 보다는 실생활에서 필요로 하는 계산을 찾아내는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서양의 자연에 대한 이해는 뉴턴에 와서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죠. 바로 자연을 가장 객관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바로 과학의 발전을 이룩하게 되는데, 뉴턴은 자연의 힘을 F=ma라는 공식을 통해 설명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상대성이론이 등장하면서 그 외연은 더 넓혀졌지만, 또 다른 벽면에 부딪히게 됩니다. 상대성이론에서 파생된 양자역학에서 하이젠베르크는 "불확정성의 원리"를 발견합니다. "측량하기 전까지는 위치 등의 물리량이 확률적으로 존재하고 측정을 하면 측정된 값으로 그 물리량이 정해진다"는 원리를 찾아내는데, 이는 과학보다는 오히려 철학에서 큰 파장을 일으킵니다. 우리가 굳게 믿었던 객관성의 문제는 완전히 엎어버리게 되었던 것이죠. 그 동안에는 존재를 단지 유무(있다 or 없다)로 표현하였지만, 이제 그것만으로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너무 당연스럽게 인식하던 존재를 이제는 %로 정의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즉 객관성도 이제는 얼마나 객관적이냐로 문제가 전환됩니다. 즉 객관적이냐 주관적이냐의 문제보다는 객관성의 정도가 더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게 됩니다.

주관성의 문제는 주로 철학적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니체는 역사를 세 종류로 구분하였습니다. 첫째는 기념비적 역사로 과거를 소급하여 위대한 과거로 복귀를 의미하는 역사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이순신의 경우, 너무 유명하여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자기 지역의 영웅으로 내세웁니다. 그러나 각각의 면면을 살펴보면 과연 그 지역과의 연관성이 깊은 것인지 회의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산은 그가 태어난 곳이고, 무덤이 있는 곳이지만, 실제 아산에서 거주하는 경우는 그의 전 생애를 살펴보더라도 많지 않습니다. 경상도 남해나, 전라도 해남 등에서도 이순신 관련 축제나 그를 지역의 역사에 포함을 시키지만 단지 임진왜란 당시에 전투를 벌여 승리한 곳일 뿐 그 지역과는 거의 무관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와 같은 단지 하나의 사실만으로 그 지역 전체의 역사로 포장하여 이순신을 빌어서 자신 역사의 위대성을 설명하는 경우를 가리켜 기념비적 역사라고 합니다.

둘째는 골동품적 역사로 오래된 것, 혹은 근원적인 것에 대한 인간 본유의 낭만적 감정을 역사의 의미로 전환시키는 태도를 말합니다. 즉 현재 사람들의 감정으로 이를 과거에 투영하여 그 가치를 숭상하는 것으로 예를 들어 고려청자를 보고 이에 대한 아름다움에 빠진 사람이라면 고려는 정말 예술성이 뛰어나고 그 감각이 탁월했다고 생각하거나, 서산 마애삼존불을 보고 백제인의 미소라고 칭송하면서 백제인들은 아마 저렇게 온화한 미소를 하고 있었으면 백제의 역사는 참으로 평화로웠을 것이라 추측하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의 내 감정으로 역사적 의미를 평가하는 것이죠. 그러므로 하나의 사실을 가지고 확대해석하거나 과정된 형태의 역사를 띨 수 밖에 없습니다.

셋째는 비판적 역사입니다. 과거에 대항하기 위해 쓰여진 기술방식으로 역사를 심판한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사마천의 사기나, 조선왕조실록이 그러한 경우에 해당하고,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의 교훈적 역사도 큰 틀에서는 여기에 포함됩니다. 명분에 맞는 것인지 맞지 않는 것인지를 보여줌으로써 현재의 우리에게 되새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입니다. 역사를 도덕교과서 쯤으로 이해하게 하는 것이죠.

과학과 철학에서 주는 역사의 의미를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대한 질문을 던져줍니다. 과학에서는 객관성의 문제를, 철학에서는 주관성의 문제를 역사에 암시합니다. 그러나 과학에서는 이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시대적 추세에 따라 역사도 이제 스스로 변화해야 하는 시점에 다달았습니다. 일어난 과거와 쓰여진 역사를 얼마나 좁힐 수 있는지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역사학의 과제가 아닐까 합니다. 이제 역사의 객관성 문제는 그런가 그렇지 않은가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풍부한 자료와 논증을 통해서 그것을 보여줄 것인가의 문제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철학에서는 우리가 왜 역사를 해야 하고 알아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단지 교훈으로서의 역사를 배웠지만, 이제 그것을 넘어서서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더 다양한 무엇을 갈구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건 뭘까요? 전 그게 뭔지 잘 모르겠네요.

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