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새로읽기01반 중간고사 시험문제(2010년 10월 18일, 의공학관 114호, 9시30분~10시20분)

1. 1880년대는 중국(청나라)과 일본이 조선을 둘러싸고 패권을 다투던 시기였다. 이때 유명한 독립운동가이자 역사가였던 박은식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공자가 대군을 이끌고 일본을 쳐들어간다면 일본의 유학자들은 목숨을 바쳐 싸울 것이다. 그러나 공자가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쳐들어간다면 조선의 유학자들은 백기(白旗)를 들고 공자의 대군을 따뜻하게 맞아들일 것이다.”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2. 우리의 친족은 가문의 형태로 구성이 되어 있다. 박씨 중에서도 본관을 밀양으로 하는 경우, 충주로 하는 경우, 반남으로 하는 경우로 나누어진다. 그러나 대부분 그 문중의 시조를 보면 신라시대를 기원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들 신라의 후손이라고 한다. 하지만 고구려, 백제, 신라는 모두 7세기 하나의 국가로 통합이 되어 현재 대한민국으로 전해지고 있으므로 한국인인 고구려의 후손, 백제의 후손, 신라의 후손으로 구분하여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아쉽게도, 우리는 스스로 신라의 후손이라고 하지 고구려의 후손이니, 백제의 후손이니 하는 경우를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왜 그럴까?

3. 조선시대에 가장 큰 무서움의 대상이었던 것은 바로 “역병(疫病, 전염병)”이었다. 통계에 따르면 1660~1864년 사이에 역병은 79차례 발생한 것으로 보아 2~3년에 한번 전염병이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1807~1835년 사이에는 100만명이 감소했는데 이는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의 인명피해보다 더 큰 규모였다. 익히 알려진 역병으로는 콜레라와 두창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역병은 그 병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역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민간에서는 제사를 지내거나, 굿을 했다. 약재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병을 치료하고자 한 이유는 무엇일까.

4. 다음 사진을 보고 알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을 모두 쓰세요



5. 고려의 네 번째 왕이었던 광종(光宗)은 자신의 배다른 사촌누이인 대목왕후 황보씨(皇甫氏)와 결혼했다. 광종은 태조와 신명왕태후 유씨(劉氏)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고, 대목왕후 황보씨(皇甫氏)는 태조와 신정왕태후 황보씨(皇甫氏)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었다. 태조의 아들과 딸이 서로 결혼한 것이다. 즉 사촌간의 근친혼인 것이다. 그림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그런데 대목왕후는 태조의 성씨였던 왕(王)씨가 아니라 어머니의 성씨였던 황보(皇甫)씨를 따랐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