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주차 강의(한국사새로읽기)

건양대강의/2010.2학기 2010. 9. 28. 20:12 Posted by 아현(我峴)

역사는 보통 다음과 같이 정의됩니다.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 그러나 실제로 이 대화방식은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습니다. 우선 위 정의에서 변수가 될 수 있는 조건을 보면 3가지로 구분됩니다. 과거, 현재, 대화. 하지만 과거는 변수가 될 수 없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과거는 그 자체로 진실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고 또한 변하지도 않습니다. 종종 어떠한 자료가 발굴되는가에 따라 변화를 받지만 그것 또한 실제 있는 그 사실을 어느정도 알고 있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문제는 바로 현재와 대화에 있죠.

대화는 어떨까요. 대화란 현재가 과거에 말을 거는 것을 뜻합니다. 거꾸로 과거가 현재에게 말을 걸 수는 없는 노릇이죠. 타임머신이 있지 않는한. 그러므로 대화의 주체는 현재가 되고 그 대상은 과거가 됩니다. 이렇게 대화의 방식을 한정하게 된다면 문제는 간단해 집니다. 현재의 일방적인 대화인가. 아니면 과거를 배려하는 상호소통적인 방식인가로 나누어집니다.

일방적인 대화란 다음과 같은 것들을 말합니다. 최근 모방송국에서 방송된 선덕여왕이 상당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실제 주인공은 선덕여왕이었지만, 우린 주로 미실을 기억하고 있죠. 미실은 어떠한 여자였을까요. 그와 관계를 맺은 남자를 보면 진흥왕부터 시작하여 실제 사모했지만 일찍죽은 연인, 결혼하여 미실의 정부로 자리를 잡았던 상대등, 그리고 내연의 남자였던 병부령. 그러나 우리는 미실의 남자들에 비추어 미실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별로 고민하지 않지만 실제 미실은 현대의 기준으로 본다면 행실이 바르지 않은 부도덕한 여자임에 틀림 없죠. 이남자 저남자와 관계를 맺고 있지만, 실제 정실남편은 따로 있고, 자기가 사모하는 남자를 따로 있으니까요. 그리고 정실남편과 사모하는 남자 사이에 각기 아들들이 존재하고, 그 아들들은 호형호부하는 사이죠. 그러므로 우리의 사고방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미실이 됩니다.

상호소통적인 방식의 대화는 무엇일까요. 우선 과거의 배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현대 한국사회도 그러하기 때문에 선덕여왕이 살던 신라시대 신라인들도 우리와 같은 방식의 사고방식을 했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인 착각이자, 현대인의 오만이죠. 미실의 남자관계를 놓고 본다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사실들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니죠. 신라사회의 연애관 내지 결혼에 대한 풍습이 현대 한국사회와 다르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을때, 일부일처제와 여자가 남자 집에 시집을 가는 형태의 결혼이 조선중기 이후에 한반도에 정착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고 있을때에야 비로소 미실의 남자관계가 좀더 뚜렷하게 이해가 됩니다. 즉 신라사회는 그렇게 해도 문제가 되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러운 그런 사회라는 것이죠. 일부일처제의 방식과 간통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던 사회가 바로 신라사회였으므로 미실과 관련된 사실들은 보다 더 잘 이해가 되는 것이고 역사적 해석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죠.

그러나 상호소통적인 방식에도 일정한 한계는 존재합니다. 바로 대화를 거는 현재가 어떠한 상태에 놓여 있느냐의 차이에 있죠. 과거에 말을 거는 현재가 수동적이고 적극적이지 않다고 한다면 상호소통적인 방식의 대화작동에 문제가 생깁니다. 즉 내가 누구인지, 현재 내가 놓은 환경이 어떠한지에 따라 대화는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한나라당에 소속되어 있는데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적인 모습보다는 그 이면에 자리잡고 있던 인권의 후퇴성을 이야기한다면 내 자신이 속한 당 안에서 온전하게 남아 있을 수 있을까요? 내가 고려대에 속해 있는 교직원인데 일제시대 김성수의 친일적인 행각을 학교발전을 위해 노력한 사실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라고 학내에서 말하고 다닌다면 난 그 사회에 남아 있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역사는 정치적인 성격을 띄게 됩니다. 역사의 정치성이죠.

정치는 곧 권력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현재는 권력에 둘러싸인 환경에 의해서 지배를 받게 되고 자연스럽게 과거에 말을 걸어야 하는 현재는 그 권력의 통제 내지는 눈치를 보게 됩니다. 즉 대화는 현재 어떠한 구조에 있는가에 따라 그 방식을 달리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역사란 무엇인가"의 물음은 그 의미를 많이 상실하게 됩니다. 그 질문과 동시에 그 상위에 있는 근본적인 물음은 역사는 어떻게 구성이 되고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가 등의 질문들이 모두 무의미한 질문으로 퇴색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죠. 즉 드러내야 할 것들을 이 질문과 더불어 감추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역사의 정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아야 하고 질문을 바꾸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 역사에 대해서 궁금해해야 할 것은 역사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바로 "그 역사는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예로 동학교도의 1894년 봉기를 들 수 있죠. 동학교도의 봉기를 어떻게 부를 것인가에 따라 현재 내가 보는 인식이 결국 어떠한 정치적 환경에 있다는 사실을 지난 시간의 강의를 통하여 충분히 아셨으리라 봅니다.(생략)

학교교육과정의 의미는 다음을 참고->학교의 의미

중등교육은 목표가 대학입시입니다. 그래서 그 입시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 우리나라가 채택한 방식은 바로 암기입니다. 교육방식이 대개 암기인 이유는 단기간에 아주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죠. 이 달콤한 유혹에서 벗어나기란 솔직히 쉽지 않은 일입니다. 중등과정에서는 국사편찬위원회라는 국가기관에서 만든 "국사"라는 교과서로 한국의 역사를 가르칩니다. 그러나 문제는 교과서를 학교에서 만들다보니 그 내용 또한 국가의 개입으로 그 중립성을 많이 훼손할 우려가 큽니다. 이번 정권이 들어섰을때 한참 교과서 파동이 있었습니다. 국사교과서 중에서 가장많이 팔렸던 모 출판사의 국사교과서에 대하여 여권 일각에서는 좌편향 교과서라고 하여 교과서 개정을 시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국방부에서 전두환 정권과 노태우 정권에 대해서 좀 좋은 의미의 역사적 해석을 해 달라는 요청을 공식적으로 교육과학기술부에 전달하기도 하였습니다. 중등교육에서 올바른 가치관 및 역사관을 심어주어야 할 국가에서 오히려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내용으로 교과서를 수정하려는 모습들을 요즘들어 쉽게 볼 수 있었죠. 그러므로 중등교육은 양면적인 측면에서 큰 문제를 낳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국가의 개입이고, 다른 하나는 암기 위주의 교육방식입니다.

그러나 고등교육에 이르면 더 이상 그와 같은 방식의 교육은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더 이상 입시가 목적이 되지 않기 때문이죠. 이제 역사 과목은 교양습득으로 그 목적이 바뀝니다. 그리고 이제 국가의 관여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중등교육에서는 국정교과서가 있었지만, 대학교에서는 그러한 교과서가 없습니다. 그렇다보니 대학별로, 강사별로 역사교양수업은 강의 내용이 제각각이 됩니다.

이러한 국가의 이중적인 역사교육의 태도는 무엇일까요?. 다음 시간 수업 내용입니다. ㅎㅎ

* 지식채널e

188 : 제정신으로 정신병원 들어가기
258 : 나의 살던 고향은
591 : 어떤 임시직

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