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주차 강의(한국사+전통문화)

건양대강의/2010.2학기 2010. 9. 20. 21:00 Posted by 아현(我峴)
4주차 강의(한국사새로읽기 + 한국의 전통문화)

인문학적 소양과 역사

지난 시간에는 인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강의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인문학이 과연 나 자신과 무슨 관련을 가지는지 보고자 합니다. 인문학에는 인문정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인문정신이란 간단하게 내 삶을 실천하는 자세를 말하는데 나의 삶을 어떻게 방향지우고 결정할 것인지에 대한 하나의 지표로써 작용합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게 되어 잘 키우다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면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한 결정을 해야 합니다. 선택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시골 학교로 보내어 아이들이 자연에서 뛰어 놀도록 할 수 있을 것이고, 아니면 도시 학교로 보내어 내 아이가 체계적인 학교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도시로 보내면 학교 뿐만 아니라 학원에도 보내야 하는 자연스러운? 상황이 전개되는데 이는 내 아이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순전히 부모의 선택이지 아이의 희망사항은 아닙니다. 과연 아이를 위한 삶의 결정이 무엇인지 한번더 고민해야 할 상황이 여기에서 발생하게 됩니다. 어느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일까. 어느 것이 내 아이를 위한 행복한 삶을 위한 것인까. 만약 인문학적 소양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면 당연히? 후자를 선택하게 되고 도시 학교에서 교육 받도록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행복할 것이라고, 좀 더 나은 삶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왜 일까요. 우리는 당연히 아이는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어 놀아야 한다고 보지만, 선뜻 그렇게 하고자 하는 부모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심지어 그런 부모를 보고 무책임하다거나 방종한다고 보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선택의 결정은 부모이지만 그 선택에 따라 삶이 좌우되는 당사자인 아이도 과연 그렇게 생각할까. 대부분의 부모들은 행복하다는 삶의 방향을 대개 돈과 명예, 권위에 두고자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좀더 나은 학교에 보내기 위하여, 좀더 취직이 잘되는 곳에 보내기 위하여, 남보다 좀더 나은 곳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하여 부모들은 도시 학교로 아이들을 보냅니다. 즉 행복에 대한 가치기준을 자본주의 체제에서 미덕이라 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돈을 번다는 정의 아래에 둡니다. 그런데 과연 행복이라는 것이 그게 전부일까요. 우리는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그 행복 조차도 자본주의 아래에 놓여 있다는 생각을 잠시 놓치곤 합니다. 권력에의 의지라고나 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자본과 권력에 굴종하지 않아야 하는 자신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늘 무언가 다른 것을 하려고 해도 "현실이 어쩔 수 없어서..."라고 말하지만 그 말 자체가 나는 인문학적 소양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으며 결국 "남들이 하듯이" 나도 하는 것과 틀리지 않다. 즉 내 자신이 없는 것이며 철저하게 자본주의적인 삶을 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자본주의를 새로 읽고 그것을 내 삶의 실천으로 옮겨 이해하는 것이 결국 가장 기초적인 인문학적 정신이라고 할 수 있으며 대학교에서 교양수업으로서 인문학을 바라봐야 하는 이유이다. 즉 교양 중 인문학 수업을 통해 나의 삶을 새로 읽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인문학 교양으로서의 역사는 무엇일까. 역사학에는 크게 2가지의 경우를 상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는 전공 학문으로서의 역사학이고 다른 하나는 교양 과목으로서의 역사입니다. 지금 현재 대학 과정체제에서는 이 둘을 거의 구분하지 못하고 있으며 대학 교양과정으로서 역사 교재를 보더라도 실제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서 내용이 더 첨가된 외에는 크게 틀과 체제가 거의 변하지 않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좀 다르게 봐야 할 것이라 봅니다. 아직 이 부분에 대해서 연구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제 생각입니다.

1894년 전라도 고부에서 있었던 동학교도들의 봉기 사건(약칭:1894년 사건)을 예로 들겠습니다. 전공 역사학의 경우는 다음과 같이 연구합니다. 1894년 사건에 대한 배경을 다룹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배경은 지방관과 농민의 관계에 있었습니다. 지방관의 침학과 과도한 세금의 징수는 농민으로 하여금 더 이상 삶을 견디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마도 전라도 고부는 그 중심에 있었고 당시 훈장을 하고 있던 전봉준은 자신을 찾아와 소지 대필을 통해 이러한 사실들을 알게 되는데, 전봉준은 당시 동학교도였으므로 자연히 1894년 사건은 동학교도가 중심이 되지만 실제로는 농민이 주도세력이 됩니다. 진행과정은 고부를 중심으로 후일 전주성을 함락하게 되지만, 조선정부의 유화책으로 결국 공주에서 결말을 보게 됩니다. 이 사건의 파장을 작지 않았던 듯 합니다. 이후 갑오경장의 중요한 배경으로 자리매김을 하니 말이죠. 이렇게 이 사건의 배경과 그 과정, 주도 인물에 대한 분석, 사건 이후의 결과에 따른 파장 등이 구체적 전공 역사학의 대상이 됩니다. 즉 전문 역사가들이 다루는 영역이죠.

그럼 교양으로서의 역사학은 어떨까요. 실제로 1894년에 있었던 사실들을 모두 알 필요는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세세하게 그 전개 과정까지 알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1894년 사건 자체의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기 이 사건은 동학란(東學亂)이라고 불렀습니다. "난(亂)"이라는 것은 159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이나, 1636년에 일어난 병자호란과 같이 적이 처들어와 정부와 대적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쉽게 말하면 반란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래서 동학란이라는 호칭을 통해 동학세력을 반란세력이라 규정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당연히 그 시각의 주체는 조선정부겠죠. 이후 이 사건의 명칭은 동학농민운동이 됩니다. 운동은 3.1운동에서도,새마을운동에서도 볼 수 있지만, 지극히 가치 중립적인 용어입니다. 역사적 평가를 보류했다고도 볼 수 있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고 생각됩니다. 현재 국사교과서에 나오는 표현이죠. 이후 이 사건의 명칭은 다시 바뀌는데, 동학농민혁명이 됩니다. 혁명이란 주도세력을 진보적이고 개혁적으로 바라보아서 동학농민세력들이 주장한 폐정개혁안을 상당히 높이 평가한 경우입니다. 그들이 말한 내용은 상당수 이후 조선정부의 개혁에 포함이 되죠. 그래서 일정한 의미를 가지는 겁니다. 최근에는 이 사건을 혁명을 넘어서서 동학농민전쟁으로 보기도 합니다. 전쟁이란 국가대 국가의 대항을 말하죠. 동학세력들은 조선정부에 대항하지만, 조선정부는 이들을 진압하지 못하고 결국 청국을 끌어들이고, 당시 약조에 따라 일본군도 들어오게 됩니자. 즉 동학세력대 조선정부와 청국군, 일본군이 대적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국제전이 된 것이죠. 이러한 의미에서 전쟁은 일정정도 합당한 이유는 갖게 됩니다.

교양으로서의 역사는 이와 같이, 가치판단의 선택이 있어야 합니다. 1894년 사건을 깊숙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해석하는 것이 교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 사건은 4가지 해석이 모두 타당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바라보는 것은 즉 나 자신이기에 선택 또한 스스로 해야 할 문제입니다.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는 위 네가지 용어 중에 하나로 선정이 되었고 그것을 단순히 암기하면 되지만, 대학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다만 여러가지 선택지 중에서 자신의 판단에 따라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만약 동학란이 합당한 용어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그 자신은 스스로가 보수적인 사람임을 알 수 있는데, 동학이 제시한 것을 반란으로 규정하고 조선정부의 온전한 지속을 더 원하고자 하기 때문이며 그것은 곧 나 자신의 정치적 판단으로 다시 설명할 수 있다. 만약 동학농민혁명이 더 적당한 용어라고 본다면 그 자신은 스스로 진보적인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데 그것은 동학의 제시된 조건이 곧 이후 조선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데 하나의 촉매가 되었기 때문이다. 즉 내가 서 있는 위치와 가치판단은 곧 그대로 역사 사건을 해석하는데 투영이 된다. 왜냐하면 역사는 곧 개인 제각각 판단하는 해석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누가 가르쳐 주어 아는 것이 아닌 주어진 과거를 스스로 판단하는데 그 힘이 있다.

이와 같이 스스로 해석해 낼 수 있는 역사라는 교양은 곧 사회를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바꾸어 이야기 할 수 있다. 즉 사회를 더 의미 있는 읽어 낼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다. 교양으로서의 역사는 전공과는 달리 이와 같은 의미가 있다. 또한 전공과는 달리 교양으로서의 역사는 단순하게 암기하는 방식이 아닌 더 넓은 시각을 길러가는 하나의 창구가 될 수 있다. 내가 서 있는 위치가 어디있지 나는 보수적인지 진보적인지 고민이 된다면 역사를 보면 된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일, 스스로 판단하고 해석하고, 나만의 세상을 바라보는 일 그것은 바로 교양 인문학 수업으로 부터 시작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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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도 전통문화는 진도가 안 나갔네요. 다음 주터 전통문화 진도 나갑니다....죄송.

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