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 속의 책, 등록유초(騰錄類抄)

드라마 동이는 보면 "등록유초"라는 책이 등장합니다. 드라마가 중반부에 흐르면서 이 책이 상당한 비중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희빈 장씨의 오빠인 장희재는 국경도시인 의주에 도착하여 청국 관리를 비밀리에 만나게 되는데 그 이유는 희빈 장씨의 아들에 대한 고명을 청국으로부터 신속하게 받아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청국 관리는 일처리를 신속하게 하는 댓가로 "등록유초"를 요구하게 됩니다.

위의 사실(事實)로 부터 몇가지 다른 사실(史實)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선 청국관리가 의주에 도착하여 비밀리에 조선 고위 관리를 만난다는 사실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실제 의주에서 진행된 청국과의 외교창구는 의주 건너편에 자리잡던 청국 도시인 봉황성 관원이 주는 공문서로 처리됩니다. 요즘말로 하면 외국 공사관 정도의 기능을 하는데. 조선에서는 의주가 그러했고, 청국에서는 봉황성이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의주의 관원이었던 의주부윤은 상당히 중요한 직책으로 여겨졌고. 의주백성을 다스리기 보다는 청국과의 외교문제에 상당히 밝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드라마의 내용처럼 실제로 의주부윤과 봉황성의 관원이 실제로 만나는 일도 없었습니다. 이들의 의사교환은 단지 공문서를 통해서만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무조건 만나지 않았던 것은 아니고 1년에 2번 만나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의주에서 진행된 국경무역인 개시가 있던 날 뿐입니다.

다른 하나는 청국으로부터 고명을 받아낸다는 사실은 실제 그 의미가 드라마와는 크게 달랐습니다. 조선후기에 이르면 청국으로부터의 고명은 큰 의미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조선에서는 이미 세자 책봉이 진행되었고, 단지 청국에서는 그것은 형식상 승인해주는 경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장희제처럼 그렇게 목숨걸고 할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드라마의 설정이 가능성이 크겠죠.

마지막으로는 등록유초라는 책입니다. 드라마에서는 등록유초를 국경일지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등록유초를 검색해보니 실제로 국경일지로 소개하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2008년에 오인동이라는 분이 쓴 저서 "꼬레아, 코이라"에서 조선시대에 들어온 외국인을 찾아내며 등록유초를 국경일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가 찾고자 했던 외국인이 등록유초 중에서 국경과 관련된 글이어서 아마 그렇게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지금 보면 상당한 실수라고 볼 수 있죠. 등록유초의 의미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 경우라 볼 수 있습니다.

등록유초는 실제 현존하는 고서입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으며 총 29책으로 생각되는데 이중에 19책이 사라지고 10책만 남아 있습니다. 조선시대 분류사의 대표적인 저서에 해당합니다. 제가 분류사라고 지칭한 것은 등록유초의 한자만 이해해도 알 수 있는 아주 기초적인 역사인식입니다. 등록유초(騰錄類抄)에서 등록은 비변사등록을 지칭합니다. 그래서 이 책이 비변사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유초(類抄)에서 유(類)는 한자의 의미 그대로 '분류'를 말하고 초(抄)는 베끼다는 말입니다. 이를 모두 이어서 풀이하면 "비변사등록에서 분류별로 정리하여 베낀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분류사의 대표적인 저서인지 알 수 있겠죠?

그러므로 등록유초는 국경일지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저서입니다. 드라마에서는 평안감영에서 보관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것도 다 거짓말이죠. 실제 등록유초는 여러가지 내용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책 - 관직
2책 - 역로, 축목, 봉수, 조전, 전운, 임사, 제향, 교화, 양사, 예악, 조회, 내외관상견급거처
3책 - 無
4책 - 부역1
5~6책 - (부역2)
7책 - 재용, 전농
8~9책 - 교린1,2
10책 - 교린3
11책 - 교린4
12책 - (군정1)
13책 - 군정2
14책 - 변사1
15~21책 - 無
22책 - 잡령
23~28책 - 無
29책 - 법제, 법금, 잡령, 민호

만약 14책에 해당하는 변사만을 두고 본다면 혹 국경일지라고 생각할 여지는 있습니다. 변사(邊事)는 국경지역 문제에 대한 문제만 모아 둔 책이니까 말이죠. 그렇다 하더라도 국경일지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옛일을 모아놓은 책이니까요.

조선시대 국경일지에 해당하는 책으로는 사변일기(事邊日記)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책은 사변, 즉 국경문제에 대하여 올라온 장계를 모아둔 책으로 승정원에서 매일 기록한 것입니다. 이 일기는 승정원 중에서도 사변가주서가 작성하였는데, 사변가주서는 승정원에 올라온 여러 문서 중에서도 국경과 관련된 문제만 다룬 관원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변일기(事變日記) 권(卷)5, 영조10년(1734) 9월 6일자에 있는 내용입니다.


의주부윤 윤득화가 본월 초2일에 장계하였다. 건천권관 조완익, 수구만호 김수장, 옥강만호 변익중, 방산만호 배상도, 청성첨사 홍우적, 청수만호 문기주 등이 급하게 연이어 알리길, 지난달 초4일에 청나라 사람 3명이 무언가를 싣고 배를 타고 내려갔다. 같은 날 청나라 사람 20명이 마상선 2척에 나누어 타고 건천 국경에서 수구 국경으로 갔는데 1명은 금창동에 들어갔고 19명은 방산 국경으로 가서 개야지동 입구에서 유숙한 후에 구령 국경으로 올라갔다. 초7일에 청나라 사람 1명이 건천 국경 대복동에서 나와서 마상선을 묶어두고 내려갔다. 27일에 청나라 사람 22명이 마상선 2척에 나누어타고 건천 국경에서 수구 국경 봉수대 앞에서 11명은 구령 국경으로 올라가고 11명은 유숙한 후에 올라갔다. 이들은 산삼을 캐러 가는 부류로 보인다. 마음을 다해 기찰할 뜻을 각 진보에 거듭 알렸음을 치계합니다.


이와 같이 압록강 근처에서 국경 건너편 청나라 사람의 움직임을 매월 왕에게 보고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국경일지라고 한다면 아마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댓글로....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등록유초)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는 필사본, 사변일기)

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