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원의 변법관과 실리론

사편(史片)/조선시대 2010. 7. 14. 16:24 Posted by 아현(我峴)

유형원의 변법관과 실리론

1. 머리말

주자학의 인식논리를 벗어나서 열려진 시각과 입장에서 현실에 대처하게 되었지만 그 나름의 명백한 한계가 있었다. 유형원은 바로 허목의 한계를 극복하여 이러한 과업을 수행해낸 재야유자였다. 유형원의 반계수록을 뒷받침하고 있는 변법이념, 정치와 철학사상이 무엇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주자 성리설에 대치할 독자적인 인식논리를 실리론(實理論)으로 성립시켜 가는 과정에 주목하게 된다.

2. 반계수록의 이념과 방법
 1) 실사구시, 고전주의의 채용

인습과 고정관념을 청산해서 주관적 사유를 실현하는 일이 인식의 전환이다. 즉 자기변혁을 추구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 다음의 2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하나는 경화양반이라는 기왕의 정치, 사회 기반을 포기하고 궁벽한 전야인 부안으로 퇴거 낙향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비판적이며 실증주의적인 학문태도를 수립하는 일이다.

허목과 상당히 상통하는데, 사실 허목은 유형원의 사생의 례로써 종유했던 유일한 선배. 허목의 고전주의 방법론과 인식태도는 유형원에게 여러가지로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된다. 또한 주자, 주자학을 결코 비판대상으로 삼지 않았다는 점도 있다. 주체적인 인식태도와 비판적, 실증적인 학문방법으로의 전환은 필연적으로 식자, 유자로서의 도리와 분을 지각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태도로 직결되었다.

 2) 반계수록의 변법이념

유형원의 구상은 사회와 정치의 전반에 걸친 법제의 개혁에 있었다. 이에 몇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로 유형원은 개혁사목의 형태로서 제도와 규식을 마련하되, 그 논리근거로서 체용론 혹은 도기론을 수용하였다. 이를 오광운의 논리에서 보이는데 주자가 정전제의 실현가능성에 대해서 회의적인 입장이었다는 사실과도 관련해서 유형원이 주자의 인식논리를 극복하고 독자적인 사유체계를 추구했다는 혁신성을 강조하는 의도가 된다는 것이다. 기의 완성, 즉 제도와 규식의 완벽한 실현을 위해서는 도가 전제로 되어야 하기 때문일 뿐 리와 도 자체를 물과 事보다 더 근원적인 것으로 인정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둘째로 변법사상의 기저에는 천리인욕설의 논리가 깔려있다. 사회, 역사현상을 군자와 소인, 문명과 야만의 이원적 대립관계, 천리와 인욕의 消長으로 보는 한꼐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법제의 정신에서 보면 삼대의 법과 후세의 법은 천리와 인욕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삼대 시기는 지향해야 할 완벽한 사회와 역사상으로 그려지고 후세는 그것을 위해 전면 개혁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될 뿐이었다. 주자학과 유교를 인식논리로 하는 유형원의 입장에서는 그것만이 최선의 방법이었던 셈이다. 천리인욕설을 삼강오륜이라는 개인의 윤리규범, 수신제가의 근거논리로 원용함으로써 엄격주의적인 사회기강을 철저화를 지향했던 송시열 등 정통주자학의 입장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셋째로 고법주의를 지향한 일이다. 고인 고제에 대한 무한의 신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삼대의 고제와 고법은 도가 관철되고 있음에서 또 고인들은 도에 근거해서 制法했으므로 신뢰할 만한 것이었다. 후세, 말하자면 현실은 삼대라는 이상과 이념에 의해서 극복되고 대치되어야 할 대상이었다. 고법주의는 단순히 복고주의와 동일시될 것이 아니었다. 고제, 고법에 대해서도 그것을 맹목적으로 이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실현가능성을 검증하고 평가하는 자세로 일관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유형원에게는 고법과 고제야말로 도와 기, 체와 용에서의 도, 체이며 천리와 인욕에서의 천리와 같았다. 기본이념은 왕도정치나 봉건제도와 같은 것이었다. 유형원은 주례를 중심으로 한 고전의 정치와 법제체계를 복원하고 있었던 셈이다.

넷째, 경국대전의 체제를 전면 수정하는 입장이었다. 이 시기 집권체제의 위기국면을 경국대전 체제의 모순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국가재조의 방략을 변법의 차원에서 모색하고 있었다. 유형원이 지적하는 국가 법전체제의 문제점은 법제의 기본 이념이 일관성을 결여한데 있었다. 도와 체, 기와 용의 선후 본말관계를 상정하면서도 그것의 본말일치론적인 관점을 견지하는 그의 인식태도에서는 그 기본이념, 즉 법제의 대체, 대강이 명백하게 제시되어야만 했다.

다섯째, 변법으로 표현되는 바 체제개혁운동은 군주와 사대부층이 그 추진주체로 되어야 했다. 유교의 전통적인 四民觀을 긍정했다. 획득신분의 사족을 상정하는 점. 과거사족제에서 공거사족제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변법. 사대부와 사족의 도리와 직분을 한층 강화하기 위한 근거논리이기도 했다. 또한 군주의 태도를 여러가지로 규정하기도 했다. 군주 입지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었다. 성학을 거론한 것은 논리상 송시열의 군주수신론, 성학론과 일치하는 바가 있었다. 유형원은 군주의 합리적, 실질적 행사를 기대하고 송시열은 군주권의 제약을 강조. 결국 변법을 통해서 지향하는 사회는 역시 治人者, 즉 군주와 사대부가 정치운영의 주체가 되어 위민을 실현하는 사회였다.

유형원의 항산을 목표로 하는 공전론은 불평등신분관계의 기본전제인 경제적 지배예속관계, 즉 지주전호제를 해체함으로써 평등사회로의 문을 열어놓는 구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고법제의 표상이 바로 봉건제라고 이해하였다. 삼대의 고법이 봉전제였으며 이에 대치된 진한 이후의 폐법은 군현제에 기인한다는 인식이었다.

3. 이기론의 전회 : 실리론의 성립

반계수록은 양란 후의 국가재조를 지향하는 변법이념에 의해서 작성된 것이었다. 왕도, 정전, 봉건을 내용으로 제도를 원용하고, 도기론, 천리인욕설, 수기치인론에 의해 정당성을 뒷받침하였다. 처음에는 주기론의 입장에서 실사의 본질을 추구하다가 마침내는 실리론을 성립시키게 되는 것이다. 유형원이 말하는 리는 단순히 기에 대응하는 리가 아니라 실리였다. 주기론적인 관점을 포기하고 실리를 내세우게 된 것은 이렇게 천도와 성인, 본연과 성명의 본의를 올바로 파악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기에 대한 리의 선차성, 주재성을 강조하고 나아가서는 실리에 의한 기의 완전한 포섭을 지향하였다. 완전한 리선기후설이라고 할 수 있다.

유형원의 관심이 세계의 시원, 사물의 현상에 관통하는 보편원리로서의 리에 있다기 보다는 자연현상, 사회 정치제도 등 개별사물 저마다의 존재원리와 그 의의를 파악하는데 있음을 말해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사의 리가 바로 실리이기 때문이다. 실리론이 내포하는 몇 가지 특징과 의의가 있다.

첫째, 실리의 리와 관련해서 도와 성을 통일적으로 이해하였다. 리가 곧 도라고 주장하였다. 도는 도로와 인도의 도, 우주 자연의 운행법칙에서의 도, 천도와 같은 것이므로 이는 실천, 실행을 의미하는 구체적인 도이며, 실리와 일치하는 것이 된다. 도와 실리와 성으로 이어지는 인식과 실천의 통일이 성립되는 것이라도 하겠다.

둘째, 이기문제에 대한 종래 유자들의 번쇄한 추론, 사변의 태도에 반대하였다.

셋째, 실리론에 입각한 인성관을 발전시킴으로써 성즉리설을 극복하여 관념 속의 도덕, 윤리적인 인간 대신에 살아있는 인간의 욕망과 감정을 긍정하고 이를 통해서 이상과 현실, 규범과 정서의 조화를 모색하는 인간상을 설정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이기 이해방식이 율곡의 그것에 가깝다고 하면서도 그 인심도심설에 대해서는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오직 유일하게 한백겸의 인심도심설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공감을 표시하였다. 이렇게 유형원이 주자와 퇴율 등 선유들의 인성설에 회의하고 그것이 모두 순의 본의에서 벗어났다고 비판한 것은 그의 인성 이해가 성즉리에 기초하는 주자학적인 인성론으로부터 이탈, 새로운 단계를 지향해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넷째, 실리론은 이기론과 경세론을 이론과 실천의 관계, 사물과 법칙의 관계로 통일함으로써 변법적 사회개혁론의 근거논리가 되었다. 전자가 바로 주자학의 격물치지로서 인간의 윤리, 도덕적 완성을 지향해서 인간과 사물의 가치를 도덕적으로 조직하기 위한 것이라면 후자는 반대로 실사, 사물세계의 탐구를 통해서 그 법칙, 가치를 실용에 적용하려는 실사구시의 방법이었다. 실사의 탐구로부터 실리에의 접근을 단적으로 예시해주는 것이 由精制動의 논리이다. 인의예지나 강상을 논의의 주제로 삼지 않았던 것은 격물치지의 사유방식을 거부하고 실사로부터 실리를 확인하는 사유과정을 스스로 모색해갔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 김준석, "유형원의 변법관과 실리론", <동방학지> 75, 1992.

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