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계 유형원의 변법론적 실학풍

사편(史片)/조선시대 2010. 7. 12. 18:55 Posted by 아현(我峴)

반계 유형원의 변법론적 실학풍

1. 머리말

양란을 거치면서 심성론 위주의 성리학 통치이념이 비현실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통치체제에 대한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게 되었고 그것이 결국 실학을 형성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조선후기 실학은 흔히 17세기 반계 유형원에서 하나의 학풍으로 체계화하였다고 한다. 이에 이 글은 다음의 2가지에 초점을 둔다.

하나는 반계의 소위 실리론이 그의 변법론과 어떻게 연관되는가를 고찰함으로써 성리학에서 출발한 그의 학문이 어떻게 실학으로 발전하는가는 밝히는 것, 다른 하나는 변법을 통해서 구현하고자 하는 그의 왕정론이 가지는 의미를 역사적 맥락에서 고찰함으로써 조선후기 실학의 객관적 독자적 의의가 무엇인가를 밝히는 것이다.

이에 그는 김준석의 경우와 비교를 한다. 김준석의 연구가 반계의 변법론의 본질을 소위 국가재조론으로 인식하는데 반하여 그는 반계의 변법론을 결코 국가를 재조하고자 하느는 것이 아니라 삼대의 왕정의 구현을 목표로 하는 국가 개혁론이라고 말한다. 즉 본질은 반계의 변법론이 국가재조론이냐 국가개혁론이냐의 차이다. 이 글은 국가개혁론적인 입장에서 유형원의 사상을 이해한다.

2. 반계의 실리론(實理論)

초기 반계의 학문은 리(理)는 단지 기(氣)의 리일 뿐이라는 견해였다. 그러나 그는 주자에 대해서도 의심스러운 곳이 많다고 하면서 강한 거부감을 느꼈다고 한다. 오랜 구도(求道) 끝에 성취한 깨달음은 리(理)가 기(氣)를 우선한다는 진리."기를 떠나서는 리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리는 스스로 실리(實理)이다. 기로 인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반계를 확신한다고 보았다.

그 중간에 대한 이기론 설명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이러한 이해 끝에 그가 내린 사회문제인식은, 지배층의 사욕에 따라 만들어진 폐법(弊法)이 인습적으로 덧쌓여 행사되어온 까닭이 바로 문제라는 것이다. 즉 삼대가 지난 이후 지배층은 사욕을 추구하기 위한 폐법을 만들어 시행해 왔으며 이제는 그것을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 곧 실리(實理)라는 점이다.

3. 반계에서 조선 실학의 탄생

반계가 강조한 것은 나의 심(心)에 갖추어져 있는 실리가 만사 만물의 리를 환히 꿰뚫어 깨칠 수 있다는 확신이라 한다. 즉 삼대 이후 폐법 난정의 계속에 따라 근원적으로 잘못되어버린 역사적 현실에서는 조선성리학이 숭상하는 주자학이라든가 혹은 조종의 법제나 현실의 왕권조차도 결코 예외일 수가 없다는 사실의 발견이라 한다. 즉 문제는 폐법이 지속적으로 쌓여서 더이상 놔두어서는 안된다는 말씀.

반계로서는 무릇 삼대 이후 폐법으로 누적되어 온 현실상황은 결코 시무론적 경장책을 가지고서는 해법을 삼을 수 없다고 하였다. 즉 적당한 수정보다는 전면적인 개편만이 잘못된 사회를 바로세울 수 있다는 반계의 인식이다. 심지어 군주도 백성을 위해 설치한 것이라 하면서 사족의 충족이 아니라 공공의 직능에 복무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에 저자는 그의 인식이 종래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획기적인 시각의 확립에 이르렀다고 보았다. 폐법의 변혁 즉 근원적인 변법을 통해 새로운 왕정의 법제를 확립함으로써만 가능하다는 것이 바로 그의 실리가 탐색해낸 새로운 해법이라는 것이다. 반계의 실학은 즉 변법론에서 출발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 예의 하나로 노비법을 들었다.

4. 반계의 현실 개혁 구상

그의 구상은 육경의 예에서도 잘 보여준다고 하였다. 반계의 경우 군주일심의 함양보다도 폐법의 변혁을 추구하는 근거 경전으로 주례를 특히 중시한 것으로 이해한다고 했다. 반계가 이 세상 통치법제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확고히 믿는 것은 바로 고례였고 그 고례는 바로 주례에 있었다. 반계의 변법론은 필연 군주를 비롯한 지배층의 사욕 추구의 삶을 길이 지탱하기 위해 만들어진 비리와 인습의 행태에다 초점을 맞추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인습의 예로 든 것이 바로 진상(進上)이었다. 반계가 보기에 진상은 왕권 하나를 유지하는 데에 거의 모든 국력이 총동원되는 기이한 현상에 불과했다. 반계의 실리는 그러한 자국의 폐습의 극복방안을 무엇보다 간절히 추구하고 있었다 한다. 이에 그는 왕정을 구현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과 법도를 확립하는 일이 필요했는데 유사이래 처음으로 왕권과 왕실을 유지하는 경상비의 책정을 법제화한다는 개혁론도 이에 포함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개혁들은 국가가 모든 주민의 각기의 책임 아래 자기 생업에 종사하면서 기술을 개발하고 자기 사업을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저자는 평가했다. 무릇 상하 모든 주민이 상호 자립적인 사회경제적 관계로 정립되는 상태야 말로 치세를 이룩하는 기본바탕이라는 것이다.

5. 반계 실학의 변법론

그의 변법론은 5가지 국가개혁론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보았다.

1) 토지개혁론
2) 왕실과 국가 경상비 책정
3) 교육제도 개혁
4) 노비법 폐지
5) 지방사회 개혁

6. 반계 실학의 특성과 의미

반계의 이기론은 리의 근원성을 강조하는 주리론의 특성을 지닌다고 보았다. 또한 반계는 삼대 이후 폐법으로 인습된 현실태는 그 병근이 너무나 깊어서 결코 시무적 경장론이라는 대증책을 가지고는 해결할 수 없다고 확신한다고 했다. 그래서 소위 조종의 법제라는 것을 포함한 모든 폐법을 변혁하지 않고서는 지치를 회복하는 길이 없다고 하는 근원적 변법론의 견지를 확립하기에 이르렀다. 그의 실학은 그렇게 형성된다고 이해했다.

비록 유학 자체가 복고적인 성향을 지닌 것이므로, 반계의 실학에도 복고적인 면이 없지 않다고 했다. 개혁론이 주례를 근거로 삼은 자체가 그렇다고 한다. 물론 주자의 향약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경전의 내용을 그대로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아니니 복고는 아니라고 한다.

* 김태영, "반계 유형원의 변법론적 실학풍", <한국실학사상> 18, 2009.

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