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히 늦게 올렸네요. 죄송합니다.

역사의 정의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대화로 표현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는 시간의 개념만 설명해줄 뿐, 공간의 개념을 역사의 정의에 포함시키지 못합니다. 이번에는 두 개념이 어떻게 역사에서 중요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려 합니다.

역사 관련 기사의 보고서를 통해 많은 분들이 이 문제를 생각해 보셨으리라 봅니다. 동북공정에 대한 생각, 독도 문제에 대한 생각이 주된 초점이 됩니다. 그러나 이 두 문제를 네것과 내것으로 단순화시킬 수 있는 차원의 것이냐 하면 그것은 회의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문제의 논의를 역사 개념으로 접근해 봅시다. 중국의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신의 동북지방에 위치한 지역(한국에서 만주라고 하는 지역)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고구려와 발해라는 나라가 위치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 지역에서 오랫동안 나라를 건국하여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지역은 현재 중국에 속해 있기 때문에 당연히 중국역사의 일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한 그들의 역사는 지금 현재 뿐만 아니라 당시 중원에 자리잡고 있던 수-당나라와 일정한 관계를 맺고 있었고, 당나라의 지방정권으로까지 해석하고 있다. 그들은 결국 현재 중국국민의 시간적 연원보다 중국 영토의 공간적 개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공간의 역사를 지향한다.

반면 한국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고구려와 발해는 후대 고려로 흡수되었고, 고려는 다시 조선으로 그리고 그 조선은 현재 대한민국으로 이어지고 있다. 고려와 조선, 대한민국은 각기 그 전통성을 삼국의 고구려, 백제, 신라에 맞추고 있는 것이다. 공간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단지 그 지역에 살았던 백성들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시간의 역사를 지향한다.

그러나 문제를 대한민국 안으로 돌려보자. 대전이라는 행정구역이 만들어진 것은 100여 년에 불과하다. 일본인들이 경부선과 호남선 부설에 따라 거주구역을 대전역 중심으로 하게 되었고, 그것이 대전시의 시초가 된다. 그러므로 대전은 근대에 만들어진 식민도시에 해당한다. 그러면 조선시대 대전에 해당하는 지역은 어느 행정구역이었을까. 조선시대 이 지역은 공주목 소속으로 현재의 공주시 뿐만 아니라, 대전의 유성지역 일대와 서구, 중구, 동구 일부가 대부분 공주 행정구역 소속이었다.

그렇다면 대전의 역사를 기술할 때와 공주의 역사를 기술할 때에 이 지역의 조선시대 부분을 기술할 때 대전과 공주 중에 어느 쪽으로 넣어야 할까. 대전시에서 자신의 역사를 쓸때는 앞서 말한, 일본인이 아니라 구석기 시대 이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부터 시작을 한다. 물론 공주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조선시대 이 지역의 역사는 대전의 역사도 되고, 공주의 역사도 된다. 왜 같은 지역의 역사를 이 두 도시에서 모두 쓰고 있을까. 대전시의 경우에는 공간의 역사를 지향하고, 공주시의 경우에는 시간의 역사를 지향하기 때문에 그렇다. 대전시는 중국의 역사인식에, 공주시의 경우에는 한국의 역사인식에 대비된다고 할 수 있다. 모두 역사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둘다 맞을 수도 있고, 둘다 틀릴 수도 있다. 양비론 내지 양시론으로 흘러갈 우려가 있지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역사의 개념에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 모두 포함되기 때문이다. 시간만의 역사를 쓸 수도 있고, 공간만의 역사를 쓸 수도 있다. 그래서 역사는 주관적이며, 서술적이게 된다. 보는 주체에 따라 달라지는게 바로 역사의 해석이다.

민족의 의미

서양에서 쓰는 민족의 개념과 한국에서 쓰는 민족의 개념이 다르다. 서양의 경우 프랑스혁명 직후 생겨나게 되었다. 제3신분에 해당하는 부르주아들이 제1신분인 성직자와, 제2신분의 귀족이 누리고 있는 특권을 공유하기 위해 nation이라는 개념을 적용하게 되었다. 프랑스혁명에 나오는 인권은 바로 nation의 권리에 대한 개념이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하늘 아래 평등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게 되고, 신분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고자 했다. 바로 부르주아들이 주축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쓰이는 민족개념은 이와 다르다. 민족은 민족주의와 동시에 들어왔는데, 민족주의는 저항이데올로기로 작용했다. 19세기 당시 서구 열강은 제국주의로 무장을 했는데, 바로 강자의 지배논리였다. 반면 약자였던 아시아의 대부분의 나라들은 제국주의가 아닌 민족주의 개념을 받아들였다. 제국주의에 맞서서 강자가 약자에 대적할 수 있는 이념이 바로 민족주의였던 것이다. 민족의 대단결이나, 민족저항은 모두 이 논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마디로 민족주의는 대항이념이었던 것이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족이라는 개념과 거의 비슷하게, 얼, 혼, 정신, 겨레 등등의 개념들이 있었는데 모두 민족과 상통하는 말이었다. 본래 조선시대에는 이러한 말이 없었다. 조선시대 백성을 지칭하던 용어는 인민(人民)이었다. 그러므로 민족은 만들어진 개념에 해당하며 만들어진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저항이념으로써 탄생한 민족, 민족주의이지만, 일제로부터 해방이 된 이후 더이상 저항의 필요성이 없던 시기에도 민족과 민족주의 개념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제 그 개념은 외부개념이 아닌 내적개념으로 전환을 맞이하게 되었다. 바로 국가에 의한 단결로 나타났는데, 대표적인 것이 국민개념이다. 국민은 국가의 존립으로 만들어졌으며, 국가에 의한 통제 대상이었다. 본래 국민이라는 말은 황국신민의 약자에서 온 것으로 바로 국가에 충성하고 복종하는 국가 안의 사람들을 총칭하는 말이었다. 그러므로 국민의 강조는 결국 민족의 개념과 상통하게 된다. 이 때에 이르게 되면 한국의 역사는 민족의 역사와 같이 쓰이게 되었고, 한국 민족의 이름으로 역사를 인식하게 되었다. 민족의식이란 여기에서 비롯한다.

21세기를 맞이한 지금 과연 민족이라는 개념은 이제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와 있을까. 더 이상 민족을 강조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어떻게 전환해야 할지는 더 고민해 봐야할 문제라고 본다. 즉 나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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