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궁녀의 위상

사편(史片)/조선시대 2010. 2. 4. 23:14 Posted by 아현(我峴)
조선시대 궁녀의 위상

궁궐에서 일하는 여성 가운데 대표적인 존재가 궁녀입니다. 현재 궁녀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거의 없는 실정이고, 대부분 진행된 연구도 보면 일제시기 왜곡된 상황이 반영된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대개 궁녀 연구는 야사의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궁녀의 법제적 위상에 대하여 간략히 설명해 볼까 합니다.

궁궐에서 먹고 자고 살며 활동하는 여성들이 수백을 헤아리기 때문에 이들의 위계질서를 세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체계를 내명부라고 합니다. 경국대전을 시작으로 속대전, 대전통편, 대전회통으로 이어지는 법체계에서 가장 먼저 시작하는 조항이 바로 내명부입니다. 내명부에 대한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http://www.1392.org/1392data/1392toed.htm

내명부도 1품부터 9품까지 구성이 되어 있으며 총 18품계에 34개의 자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정1품 빈부터 종4품 숙원까지는 왕의 후궁(後宮)이고, 정5품 상궁부터 종9품 주변궁까지가 궁인(宮人)입니다. 종4품 숙원과 정5품 상궁은 한 등급 차이이지만 숙원은 시중을 받는 존재이고, 상궁은 시중을 드는 존재이기 때문에 신분상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내명부는 대개 남성 관료에 대해 궁궐의 여성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쓰이지만, 그 외에 궁궐 밖에 살면서 궁궐에 들어와 왕비를 만나는 여성들인 외명부에 대해 궁궐 안에 사는 여성을 지칭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허드렛일을 하는 신분이 낮은 여성들에 대해 일정한 지위에 임명받은 여성을 지칭하는 용어이기도 합니다. 이를 여관(女官)이라고 하는데 그 안에는 내관(內官)과 궁관(宮官)이 있어서 내관은 국와 후궁 반열의 여관이고, 궁관은 그 아래 실무를 맡은 여관을 말합니다. 내관이라는 용어는 나중에 여관보다는 내시(內侍)를 가리키는 용어로 많이 쓰였고 궁관은 동궁(東宮)에 배속된 남자 관원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이기도 합니다.

내명부 체계에서 4품 이상이 국왕의 후궁 반열이라면 5품 이하는 궁인이라고 했습니다. 궁인은 대개 궁녀(宮女)로 엄밀하게 말하면 상궁과 시녀(侍女)를 합하여 부르는 용어입니다. 상궁은 정5품으로 궁인 가운데 가장 상위이며 시녀는 그 아래 직급의 궁인을 총칭하여 부르는 말입니다. 또 나인(內人)이란 말도 있는데 이 말은 굳이 비교하면 외인(外人)의 대칭되는 말로 궁궐 안에서 기거하며 활동하는 여자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실제로는 혼용되어 쓰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관의 체계는 대개 세종 10년 3월의 기사에서 자세하게 설명되고 있습니다. 국초에 처음으로 내관 제도를 두었지만 완벽하지 못하였고 이에 당나라 제도를 상고하여 정한 내용이 처음으로 이 기사에 보입니다. 이 때의 내관제도를 통해 당시 궁관의 업무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비서의 영역입니다. 왕비 측근에서 왕비의 공적 활동과 명령하달, 문서출납을 담당합니다. 정5품 상궁, 정6품 사기, 정7품 전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둘째는 의전 영역입니다. 왕비의 의전과 일상생활을 돕는 분야입니다. 정5품 상의, 정6품 사빈, 정7품 전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손님을 맞이하거나 조회에 뵙는 일, 잔치를 차리는 일과 손님들이 왕비를 뵙는 일 등등을 맡습니다. 셋째는 복식영역입니다. 왕비의 복식에 관한 시중을 맡는 분야입니다. 정5품 상복, 정6품 사의, 정7품 전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국왕을 시중드는 관서에 비교하면 상의원에 해당합니다. 넷째는 음식 영역입니다. 음식상이나 약제를 지어 바치는 분야입니다. 정5품 상식, 정6품 사선, 정7품 전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궁중의 사옹원과 유사한 일을 맡습니다. 

다섯째는 접대 영역입니다. 왕비 측근에서 손님접대와 그에 필요한 시설환경을 조성하는 일을 맡은 분야입니다. 정5품 상침과 정6품 사설, 정7품 전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국왕의 내시와 비슷한 일을 하며 공적 영역에서는 예빈시나 전설사, 장전고 등의 관서와 통합니다. 여섯째는 직조 영역입니다. 직물과 의복생산을 관리하는 분야입니다. 정5품 상공, 정6품 사제, 정7품 전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옷감을 지어 옷을 만든다는 점에서는 일반 관서들 가운데 이를 직접 담당하는 관서가 없어서 여성 궁관 고유의 영역이지만, 직물의 진헌에서는 제용감과 통합니다. 일곱째는 사법 영역입니다. 왕비의 영을 세우고 이를 어긴 궁녀들을 적발하여 처리하는 것을 담당하는 분야입니다. 정5품 궁정과 정7품 전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관료사회의 사헌부나 형조와 같은 기능을 합니다.

17세기에서 18세기로 넘어오면서 궁녀의 수효가 대폭 늘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영조 연간을 보면 영조 스스로도 600명의 궁인도 오히려 부족하다고 한 말을 보면 당시에는 이정도의 수가 기본 인식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호 이익도 환관의 수효를 335인, 궁녀의 수효를 684인이라고 구체적으로 적기하고 있습니다. 궁녀의 수를 줄이는데 인식했던 영조에 비하여 정조는 즉위초부터 과감하게 불필요한 자리를 줄여서 비용을 절감하는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내시와 액정서에서 108자리를 줄인 것으로 보면 아마도 정조대 궁중은 400에서 500명 정도였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떤 사람이 궁녀가 되는가. 아니면 누구를 궁녀로 뽑을까. 궁녀의 위상에 대해서는 속대전 공천조에 잘 나와 있고 증보문헌비고의 혈률 제율유기에도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본문 : 궁녀는 단지 각사(各司)의 하전(下典)으로만 뽑아 들인다
주: 내비(內婢)는 뽑아 충원할 수 있고, 시비(寺婢)는 특교가 없으면 뽑지 못한다. 양가(良家)의 딸은 일절 거론하지 않는다. 양인이나 시비를 추천하여 들이거나 스스로 궁녀가 되어 들어오는 자는 장 60대를 때리고 도 1년에 처한다. 종친부와 의정부의 노비는 시녀와 별감으로 골라 정하지 못한다.

하전은 여러 관서에 소속된 하급 실무자입니다. 여성의 경우 의녀가 적간 임무를 잘못 수행했을 때 하전으로 만든다는 이야기로 보아 의녀보다 낮은 지위의 실무자로 인식되었습니다. 즉 그 신분은 기본적으로 천인(賤人)이었습니다. 국가 공공기관에 예속된 노비 가운데 실무능력을 인정받아 전문적인 일을 맡아 수행하는 일꾼들을 하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관서의 하전을 제한없이 궁녀로 뽑았던 것은 아닙니다. 내비는 내수사와 여러 궁강에 예속된 신분으로 지방에 살면서 신공을 바치는 여자노비를 말하는 것이고, 시비는 의정부와 육조 같은 중앙관서에 예속된 신분으로 신공을 바치는 여자노비를 말하는데 내비는 궁녀선발이 되지만, 시비는 불가능했습니다. 왜냐하면 내비는 궁 소속이지만, 시비는 공공의 영역 즉 국가에 소속된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내비나 시비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양인의 딸이었습니다. 양인여자를 궁녀를 뽑아 들이는 것은 거론조차 하지 못하게 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국가 기강의 기저부터 흔드는 아주 중차대한 범죄라는 뜻일 것입니다.

궁에는 이들 뿐만 아니라 여러 다양한 직급의 여인들이 존재했습니다. 봉보부인, 아기유모, 무수리, 수모, 파지, 방자, 아기배비, 유모배비등입니다.

봉보부인(奉保夫人)은 임금을 젖먹여 키운 유모입니다. 임금이 어머니 같이 우대하는 사람으로 외명부의 종1품의 직급이지만, 실제로는 궁궐에 상주했습니다. 아기유모(阿只乳母)는 아직 어린 왕의 자녀(이들을 아기(阿只)라 부른다)의 유모입니다. 무수리는 한자로 수사(水賜), 수사이(水賜伊), 수사리(水賜里)라고 쓰는데 몽골어를 음차한 표현입니다. 궁궐에서 심부름을 하는 계집종인데, 궁궐 밖에 살면서 궁궐에 드나들거나 궁궐에 상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남편이 있는 여자가 무수리가 되기도 합니다. 수모(水母)는 세수간을 담당하는 계집종입니다. 파지(巴只)는 궁궐에서 소제 등의 허드렛일을 하는 어린 계깁종을 말합니다. 원래 각 관서에서 일하는 어린 남자노비를 궁궐로 들였다가 소녀로 바꾸었습니다. 방자(房子)는 여러 관서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계집종인데 궁궐에서는 주로 시녀들의 사사로운 잔일을 맡았습니다. 아기배비(阿只陪婢)는 임금의 어린 자녀가 있을 때 그에게 딸린 계집종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유모배비(乳母陪婢)는 임금의 어린 자녀에게 젖을 먹이는 유모에게 딸린 계집종을 말합니다. 이들이 모두 궁중의 식구들입니다.

* 출처 : 홍순민, "조선시대 궁녀의 위상", <역사비평>, 2004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