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전쟁 그리고 복지

사편(史片)/그외 2009. 12. 10. 14:43 Posted by 아현(我峴)
자본주의, 전쟁 그리고 복지

일본에서 근대적인 복지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1937년 중국대륙 침략을 시작하고나서 이들 군인과 군인가족을 보살필 수 있는 기관, 후생성의 설립부터라고 한다. 즉 복지는 전쟁에서부터 비롯이 되었던 것이다. 복지국가의 대명사라고 하는 노르웨이는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온갖 무기를 생산해 세계에 수출하는 7위의 무기수출국이라고 한다. 노벨평화상을 수여하는 나라가 노르웨이라고 하니 역설이 아닐 수 없다. 노르웨이산 무기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다량으로 사용되고 있으니, 평화상을 주는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오바마 미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에 3만명의 미군을 더 보낸다고 하여 평화상을 받은 대가로 노르웨이산 무기를 더 판촉하는 것이 아닐까.

정치외교학에서는 민주국가 사이의 전쟁은 없다는 법칙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역사를 들여다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과 독일은 모두 민주국가였다. 10년전 나토군이 세르비아를 공격할 때도, 양측 모두 민주국가였다. 다만 민주국가들이 싸우지 않는 이유는 이들 사이에 서열이 어느정도 정해졌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1812년에 영국을, 제1차,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을,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을, 냉전에서 소련을 각기 패배시켰기 때문에 현재의 미국이 가능했다. 이들 서열의 과정은 전쟁이었고, 전쟁을 통해 미국 자본주의가 성장했다.

결국 전쟁을 빼 놓고 미국이 초강대국이 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그 계기는 미국의 남북전쟁(1861~1865)이었다. 전쟁 이전에는 철저한 지방분권사회였다. 1365개의 은행이 각기 자기만의 화폐를 발행했고 연방정부의 상비군은 겨우 2만 여명이었다. 결국 이러한 느슨한 국가가 전쟁을 통해 중앙집권적 국가로 탈바꿈을 한 것이다. 전쟁이후 화폐발행권을 국가가 독점하고 연방소득세라면 명목으로 국가재정을 충실히 하여 연방군대를 유지했다. 전쟁이 미국이라는 강대국을 만들었다.

대외적으로 강대국임을 천명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소위 전쟁산업국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전쟁 지출로 미국 재정지출을 2년간 20배로 끌어 올렸다. 전쟁이 미국의 배를 살찌웠다. 자본가들도 이를 반겼다. 평화시에는 후발국가들에 의해 시장이 포화되어 출혈경쟁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이윤율이 떨어진다. 그러나 전쟁시에는 그렇지 않아 전쟁특수로 군수품이 소비되어 이윤율이 떨어지지 않게 된다. 국가의 입장에서도 자본가의 입장에서도 전쟁은 좋은 경기부양책이 되는 것이다. 제1~2차 세계대전은 미국에게 황금을 낳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국가의 건강함 그 자체였다.

자본주의가 전쟁을 먹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2차 세계대전 후에 병력 수송기는 여객기로 변해 있었고, 군대 운반의 필요성에서 확장되었던 철도는 민간수송을 위한 중요한 교통이 되었다. 군수 첨단기술 관련자들의 전유물이었던 인터넷은 전세계를 지구촌으로 만들어주는 중요한 상업 상품이 되었다. 모두 군수 관련 기술 덕분인데 그것이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지대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하드웨어적 영향 이외에 소프트웨어적인 영향도 있다. 복지는 원래 사회민주주의의 산물이라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사민주의자들이 복지체계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국가의 필요에 의한 측면이 컸다. 징병을 통해 전쟁에 내보내야 할 국민들의 충성심을 보장받기 위해 초등교육을 의무화했던 것이다. 복지구조를 먼저 만들었던 독일의 경우 노후연금법, 병가수당법, 실업수당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킨 사람은 바로 사민주의들이 아주 싫어하던 비스마르크였다는 사실은 국가에서 복지가 필요한 이유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미국도 마찬가지여서 노동자층을 중산층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던 계기는 노동자출신의 퇴역 군인들에게 무상 고등교육의 기회를 주었던 1944년의 퇴역군인 대우법이었다.

대공활 때 23%에 이르렀던 미국의 실럽률은 전쟁이라는 특수와 대량의 국민 징병으로 1%로 실업률을 떨어뜨렸으며 워싱턴 노동자의 실질적인 소득을 전쟁의 호경기로 42%로 늘어나게 했다. 결국 대중이 경제를 살리고 아국의 위세를 높이는 데에 독일의 홀로코스트와 같은 대량의 학살에 대부분 열광했던 것은 자본주의와 전쟁 그리고 복지가 가지는 연관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전쟁이후 노후에 대한 대책을 국가로 부터 약속받은 노동자가 아우슈비츠에서 유태인이 죽었다고 하여 히틀러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전쟁 이후 노후에 대한 보장을 받은 미국 군인이 이라크에서 이라크 국민을 죽인다 한들 부시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복지의 기원이며 극단의 시대가 나은 역설적 산물이다.

* 출처 : 박노자, "자본가에게 전쟁은 축복", <한겨레21> 789호, 2009년12월14일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