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객관성 문제

사료로서의 사실에서 역사적 사실로 나아갈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가들이 어떻게 쓸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과거의 자료를 가지고 역사적 의미를 꺼내는 과정은 역사가들과 같은 전문가 집단에 의해서 객관적인 시각으로 진행이 됩니다. 객관적 시각은 대학원 과정을 통한 훈련을 통해서 이루어지지만 꼭 전문적인 집단만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시각의 차이이고 객관성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의 다름에 있습니다. 이러한 객관성 문제는 “역사는 과학인가 문학인가”라는 질문으로 압축됩니다.

위 질문은 다르게 바꾸면 역사는 객관적인가 주관적인가로 표현이 가능할 것입니다. 하나는 서양의 과학 학문 흐름에서 다른 하나는 철학의 역사에 대한 문제제기로 문제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서양의 과학은 자연을 이해하는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자연을 객관적으로 표현가능할까에 과학의 시작이 있었습니다. 수학 도식을 보면 동양에서는 밭의 넓이를 구하기 위하여 산수를 활용하였지만, 서양에서는 넓이를 구하는 공식을 찾아내는데에 목적을 두었습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인 a2=b2+c2도 어찌보면 인간이 자연을 이해하고자 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그러한 공식을 추구했을 것입니다. 3:4:5는 여기서 나오죠. 이러한 근대 과학은 뉴턴의 세 가지 법칙으로 완성됩니다. 첫 번째 법칙인 F=ma에서 지구안의 모든 자연 법칙은 이 공식으로 설명됩니다. 인간이 자연을 이해하고자 하는 완성이라 볼 수 있죠. 자연을 가장 객관적으로 설명한 것이 바로 이 공식입니다. 그러나 이 근대과학은 아인슈타인의 등장으로 큰 수정을 겪게 됩니다. 상대성 이론의 등장은 이제 우주에서도 인간이 자연현상을 이해하게끔 해 주었습니다. 뉴턴의 법칙인 지구 안에서만 가능했던 객관성이라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우주에서도 객관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해 주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상대성이론의 등장과 더불어 한편에서는 양자역학이 발전하게 되고 현재의 초전도체에 대한 기본 이론인 불확정성의 원리가 등장하게 됩니다. 이 원리는 “측정하기 전까지는 위치 등의 물리량이 확률적으로 존재하고 측정을 하면 측정된 값으로 그 물리량이 정해진다”는 것으로 간단히 말해 전자의 경우 그 위치가 확률로 정해진다는 것입니다. 존재의 유무를 확률로 표시해야 설명이 가능하다는 말인데, 이것은 근대과학을 넘어서는 기장 기본적인 전제 중에 하나가 됩니다. 우리가 당연스럽게 인식하던 존재를 있다 없다가 아닌 몇%로 정의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객관적인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도 가능해졌던 것입니다. 객관을 있다없다가 아닌 얼마나 객관적인가를 문제삼게 됩니다.

철학에서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역사의 의미를 구체화 시켰습니다. 니체는 역사를 세 종류로 설명하였습니다. 하나는 기념비적 역사로 이는 과거를 소급하여 위대했던 과거로 복귀를 의미하는 역사를 지칭합니다. 최근 지방자체단체에서 어떠한 인물을 내세워 그 지역의 위대한 사람을 치켜세우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일들을 기념비적 역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산의 예를 들면 현재 아산에서는 이순신을 내세워 지역 축제를 하는 등의 사업을 하고 있지만, 실제 아산과 이순신의 관계는 이순신이 아산에서 태어났다는 것과 이순신의 사당이 아산에 있다는 사실 뿐입니다. 실제 잘 아시다시피 이순신은 상당 부분 관직생활을 하며 함경도와 전라도, 경상도에서 활약하였지 아산하고는 큰 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관련성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 그 지역의 인물을 내 세우는 것은 결국 기념 이외의 의미는 없는 것입니다. 또 다른 예로는 개천절을 들 수 있습니다. 최근 10월 1일 개천절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4341년 주년이었습니다. 그러나 개천절 행사는 1949년 10월 1일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제정 ·공포하여 이 날을 개천절로 정하고 국경일로 한 것이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그 이전에는 개천절이라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실제 행사 횟수는 말한다면 60여회 정도가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굳이 기원전 2333년으로 기원을 소급 적용하고 있으므로 이 또한 기념비적 역사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개천(開天)이 오래되었다고 포장하기 위해서는 되도록 옛 과거로 올라가는 것이 더 좋기 때문이죠.

다른 하나는 골동품적 역사로 오래된 것, 혹은 근원적인 것에 대한 인간 본유의 낭만적 감정을 역사의 의미로 전환시키는 태도를 말합니다. 이는 현재 사람들이 과거 안에 안주함으로써 보존해야 할 가치들을 숭상하는 것을 말합니다. 서산의 마애삼존불을 보고 백제인의 미소라고 하거나 신라의 귀면와를 보고 신라인의 모습의 추적할 수 있다는 등의 설명입니다. 이는 하나의 사실을 가지고 확대해석하거나 과정된 형태를 가집니다. 기념비적 역사가 작인 단편적인 사실을 가지고 없는 사실을 역으로 추적하여 만들어내거나 날조하는 경우이지만, 골동품적 역사는 현재 있는 사실을 가지고 그 동사를 회상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비판적 역사가 있습니다. 이 과거에 대항하기 위해 쓰여진 기술방식으로 역사를 심판한다는 의미가 강하게 투영되어 잇습니다. 교훈적인 역사가 그러한 측면을 반영합니다. 옛 사실들의 행동은 옳은가 그른가. 명분이 맞는가 그렇지 아니한가를 통하여 현재 우리가 되새겨야 할 무엇을 찾아냅니다. 역사가는 재판관이고 과거가 피고가 되며 역사는 판결문에 해당합니다.

과학과 철학에서 주는 역사의 의미는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대한 질문을 던져 준다는 데에 있습니다. 과학에서는 포스토모던이라는 시대적 추세에 역사는 얼마나 객관적일 수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끔 합니다. “일어난 과거”와 “쓰여진 역사”를 얼마나 좁힐 수 있는지는 모스트모더니즘이 역사에 주는 새로운 목표입니다. 역사의 객관성 확보는 단지 그러했는가 그렇지 않은가라는 사실여부에 두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풍부하게 쓸 수 있는가에 초점을 이동시킵니다. 철학에서는 역사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집니다. 우리는 단지 교훈을 배워야 한다는 의미로 역사를 배워 왔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단지 위의 세 가지 철학적 질문으로만 남아 있지는 않습니다. 역사를 통해서 다양한 것을 알게 되는데 이는 곧 본 수업의 목표에 해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