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보는 정조와 19세기

사편(史片)/조선시대 2016. 7. 1. 12:41 Posted by 아현(我峴)

새롭게 보는 정조와 19세기


1. 왜 정조와 19세기인가


* 정조시대 이후 이미지 : 탕평정치, 다양한 부문의 개혁, 도시화와 상공업의 발달, 실학, 산발적 민의 저항, 세도정치, 매관매직, 삼정문란, 사상 탄압과 천주교 박해, 대규모 민중운동

* 정조의 상종가는 19세기 전반기를 희생양 삼아버린 듯

* 세도 정치의 최대 설계자는 정조

* 올바른 척신의 육성을 암시

* 책임은 정조가 공공의 시스템을 무력화시켰다는데 두어져야 할 듯

* 정조의 최후 선택은 스스로 내걸었던 의리의 공정성을 스스로 허약하게 만들어버린 셈

* 정조와 19세기의 단절은 .... 19세기 전반기를 단순화시키는데도 영향을 미쳤다

* 세도정치 : 대부분의 한국학 분야에서 연구가 꽤 빈약한 축에 든다

* 다양한 신분 출신 지식인들의 저술은 오히려 기존의 글쓰기 틀을 벗어나 만개하고 있었다


2. 맥락, 변화, 국가와 사회

 1) 당대의 맥락


* 정조시대 개혁의 중심이라고 여겼던 의제조차 복잡한 의미 관계에 있었으리라 짐작

* 군주의 절용을 통해 백성들의 생활이 나아질 수 있다는 주장은 성리학의 전형적인 경제 논리

* 성리학의 이상을 바란 군주, 명분과 의리를 중시한 군주, 민생을 걱정하는 군주, 물자유통과 기구 개선에 적극적인 군주, 서학에 관대한 군주, 새로운 문체에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군주, 전제적이고 시스템을 부정하는 군주 : 정조의 이미지


 2) 변화와 대응


* 실학의 흥기, 서학의 전파, 소품문과 소설의 유행, 중인문학의 만개, 개인 취미의 다양화 .... 時와 俗

* 정조는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변화를 통제하려는 보수적인 면모 .... 문체반정

* 時를 인정하지만 俗을 교정하려 했던 정조

* 사상, 사회, 문화는 18세기 후반부터 변화를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달라진 것은 결국 국가 혹은 중앙정부의 유연함이나 조정능력이었다. 그것을 세도정치기 정부의 硬化라고 부르고 싶다. 탄력을 잃어버린 국가와 변화하는 사회 사이의 괴리.


 3) 국가와 사회의 온도차


* 같은 사건이라도 유만주는 기근의 생생함을 전했고, 실록은 애쓴 관리와 국왕의 관용에 초점을 맞추었다.

* 문제는 국가, 사회를 뭉뚱그린데서 비롯되었다면 이를 분리하는게 대안이다. 그 시각에서 19세기를 보면 어떨까

* 국가나 중앙정치를 기준 삼아 개혁과 보수로 단순화한 구도 속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 국가와 사회를 분리해서 연결과 단절이 더 잘 보인다. 국가는 정조대까지 유교와 의리 등의 구심력과 변화라는 원심력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세기로 접어들면서 국가는 탄력을 잃었지만 사회는 변화를 중단하지 않았다.

* 이질성이 강화되기 시작한 것이다...그 이질성을 담아내는 틀은 복수일 수록 좋다


3. 정조와 19세기, 연속과 단절을 생각함

 ① 정조 시대의 다학문적 접근

 ② 정조와 세도정치

 ③ 세도정치기의 이질적 시공간


○  19세기를 보려면 국가와 사회를 나누어야 한다는 말이다.....


● 출처 : 이경구, <역사비평> 115, 2016.


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