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차 - 역사에서 세 가지 사실의 의미

역사는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하는 학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실의 정확성 여부에 따라 역사의 진정한 의미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에서 의미하는 사실에는 세 가지가 존재합니다. 하나는 “과거의 사실”로 과거에 있었던 그대로의 사실을 말하며 이는 곧 진실이나 진리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다른 하나는 “사료로서의 사실”로 과거의 사실 중에서 그대로 흔적으로 남아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사실을 말합니다. 고문서나 고서, 그림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마지막으로 “역사적 사실”을 들 수 있습니다. 사료로서의 사실 주에서 역사가들에 의해 객관적으로 재구성된 사실을 말합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역사는 바로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첫째 “과거의 사실”은 과거의 진실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진실을 이야하고자 하는 노력을 역사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철학에서 말하는 절대적인 이상향인 이데아나 유토피아, 철인(哲人) 혹은 성인(聖人)의 경지가 역사에서 말하는 진실에 해당합니다. 절대적인 진리를 찾고자 하는 노력이 철학이라고 한다면 인간의 역사에 대한 진실이 무엇인지 알려고 노력하는 학문이 역사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그 진실은 어느 누구도 알 수 없으며 앞으로도 알지 못할 것이 분명합니다. 철학에서 이상세계 혹은 이상적인 인간상을 상정해 주고 이에 나아가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주듯이 역사에서도 과거의 진실을 염두해 두고 그 모습에 가깝게 과거의 재현하려고 하는 모습이 역사라는 학문의 목표가 됩니다.

둘째 “사료로서의 사실”은 쉽게 말해 현재 남아 있는 과거의 자료들입니다. 과거의 자료는 무수히 많습니다. 전문적인 역사자료인 고문서나 고서 이외에도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이 사료로서의 사실에 해당합니다. 거창하게 우리 민족의 역사를 이야기 할 것없이 가깝게 우리 가족의 역사를 생각해 보면, 우리 부모님의 옛 모습이 궁금하다면 부모님의 사진첩을 살펴보면 됩니다. 나의 현재 모습과 나와 같은 나이대에 찍은 부모님의 사진을 본다면, 나와 얼마나 닮았었는지 어떠한 모습을 달랐었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며, 부모님과 내가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지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과거 부모님의 생각을 알고 싶다면 부모님의 일기나 편지를 살짝 들여다 보면 됩니다. 현재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그 당시 부모님의 삶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변화했는지 흘겨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이 바로 사료로서의 사실에 해당하게 됩니다. 사료로서의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후일 나의 모습을 재구성하고 싶을 때 그에 해당하는 연결고리를 남아 있는 자료로서만 이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찮은 물건이라도 그것만 가지고도 옛 일을 되살릴 수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역사적 사실”은 재구성된 과거를 말합니다. 재구성의 과정은 앞서 말한 “사료로서의 사실”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며 재구성의 목표는 “과거의 사실”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사료로서의 사실과 과거의 사실 사이에 역사적 사실이 어느 중간에 존재하게 됩니다. 이러한 인식 하에서 역사를 생각해 본다면 역사는 과거 그 자체일 수 없으며 과거의 담론(인식틀)에 해당하게 됩니다. Keith Jenkins는 “역사의 의미는 원래부터 과거에 내재해 있던 것이 아니라 외부에 의해 과거에 부여된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역사는 과거 그 자체가 아니라 과거에 대한 담론이고 진실게임은 역사도 아니고 아무의미 없는 일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역사는 기억에 대한 투쟁이며, 기억의 정치학이기도 합니다. 되도록 과거의 기억에 가깝게 나아가고자 하는데 역사의 의미가 있으며 과거에 그러한 사실이 있었는지의 유무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 2009년 2학기 건양대 3주차 강의입니다 (한국사새로읽기 01, 02, 한국의전통문화 02 공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