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사대부 인식과 정치철학적 입장 연구


1. 들어가는 말


* 정조 역시 결국에는 존주가 아닌 행왕의 의미로서 존왕설을 지지


2. 사대부의 학풍과 정치 성향 비판


* 정조는 즉위 초 윤음을 통해 계지술사와 숭유중도의 포부를 천명 → 사대부 우대정책

* 정조의 태도는 당시 학문의 권위자로서의 자신에 대한 신념에서 연유한 것으로 군사 개념의 한 짝을 이루는 사도에 대한 발언을 통해 명시적으로 드러남

* 정치행위의 정당성을 학문의 완성(사도) 혹은 인격의 완성(덕성)에서 찾으려고 했던 점에서, 정치나 권력 자체의 고유성보다는 인성론(본성론)과 존재론(형이상학)에 기초한 이념적 토대를 더 중시했던 관점이라고 볼 수 있다.

* 정치의 부재라는 비판적 평가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 전통사회에 있어 정치행위란 결국 인간 본성의 완전한 구현 혹은 학문의 완성에 비례해서 평가될 수 밖에 없는 이차적 문제로 간주되기 쉬웠다.

* 조선시대 정치적 지형도에서는 정치론을 규범적 본성론으로 환원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인격과 학술 수준을 두고 벌인 수백년 간의 학문적 논쟁 자체가 지극히 정치적인 것이었더는 점이 중요

* 오직 피방을 목적으로 한 사당만이 판을 치는 상황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정초는 현실 분당 간의 실질적인 탕평 임무가 군왕인 자신에게만 주어져 있다고 보았을 것이다


3. 군사 개념의 강조와 군신 관계의 재정립


* 군사에 대한 정조의 자의식은 기존의 왕과 사대부 누구보다 더 강했다고 볼 수 있다.

* 정조는 군사로서의 본인과 신료 간의 넘을 수 없는 분계에 대해 직접 거론하며 매우 예민한 태도를 취했다.

* 정조는 사실 군사의 자리라는 것이 일반 사대부가 얻을 수 없는 현실 군주의 지위를 확보할 수 있을 때만 실현 가능한 것이라고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4. 성왕의 황극 정치론 : 정조 정치철학의 쟁점들


* 황극의 자리는 원리적으로는 구주 내에서 하늘과 땅의 운용 원리를 매개하는 역할을 상징하는 것이지만, 현실의 정치적 장에서는 사심과 사당의 분쟁을 조율해서 공론과 공리를 조성하는 기준으로 간주

* 다만 문제될 수 밖에 없었던 점은 정조의 정치적 신념 안에 공존하기 어려운 이 두 가지 양상이 동시에 존재했다는 점이다. 개인적 수양과 학문의 완성에 따라 누구나 군사를 자임할 수 있고 군사가 되어 극을 세울 수 있다고 본 주자학적 신념과 아울러 이미 세습 왕조 하에서 군주인 자만이 사도의 성취를 통해 실질적인 군사로 군림할 수 있으며 사대부의 수신을 넘어선 정치권한을 발휘한다고 본 두 관점이 병존했다는 셈이다.

* 가령 왕위를 받아 군주가 된 자라도 도덕과 학문이 완전치 못한 상태라면 그에게 정사의 운영권을 주지 말아야 할 것인가라고 물었을 때, 정조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 정조가 학문의 완성 전이라도 민생과 사직을 돌보는 정치행위에 참여할 수 있다고 본 반면, 이석하는 학문의 성취가 근본이며 그런 뒤에 벼슬하는 것이 순서에 부합된다고 주장

* 자신은 치민이란 것이 이미 학문 가운데 있는 일이며, 따라서 수신과 제가, 치국이 그 순서를 바꿀 수 있다는 점을 설득시키려고 했다.

* 정조는 도덕적 인격연마와 탁월한 정치행위 사이의 믿음을 부정하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 이들에게 군사로서의 정조는 전통적 군신관계의 이상을 파괴하는 존재로 비춰졌을 것이다.

* 1782년 공조참의 이택징 : 이 규장각은 곧 전하의 사각이요, 나라 안의 공공의 각이 아니며, 이 신하는 곧 전하의 사신이지 조정에 있는 인신이 아닙니다.

* 다산 역시 노소론계 문신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군신관을 견지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는데, 다산의 정치적 쟁점들을 정조의 왕권강화를 위한 이론적 토대로만 평가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약용은 오히려 당시 사대부들이 보편적으로 지닐 만한 정치감각을 더 많이 공유했다고 볼 수 있다.


5. 나가는 말


* 정조가 한 사람의 정치가로서는 권력의 원점에 서서 노소론과 남인을 자유자재로 막후 조율하며 탁월한 정치역량을 발휘했지만 주자학적 세계관을 근본적으롤 비판할 수 있는 사유의 원점에 서지 못했던 것은 이 때문이라고 볼 수 있겠다.


○ 한마디로 정조가 좀 특이한 거였어. 난 모든 신하들의 스승이야. 이런 방식으로 정치를 했다는 말씀이지.


● 근거논문 : 백민정, <한국실학연구> 20, 2010.


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