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옥 관련 자료 추가
자단삼(紫團蔘)은 태항산(太行山)과 난약산(蘭若山)에서 산출되는데 천하의 보배로 여긴다. 순조(純祖) 초에 의주부(義州府)의 상인 임상옥(林尙沃)이 백삼(白蔘) 한 움큼을 얻어 앉은 자리에 두었는데, 마침 따뜻한 물에 젖었다가 온돌에서 말라 색이 변하여 붉게 되었다. 연경(燕京)에 가지고 들어가서 시험 삼아 그 나라 사람에게 물으니, 그 사람들이 크게 놀라며 ‘촉삼(蜀蔘)이 조선에서 생산되었다.’고 하고는 후한 값을 쳐주었다. 다음 해에 쪄서 홍삼을 만들어 조금씩 가지고 들어갔고, 또 그다음 해에 역시 그렇게 하여 드디어 큰 상인이 되어 두 나라에 이름이 났다. 지금은 저들이 수삼(水蔘)을 사서 홍삼으로 변조하였고, 백삼과 함께 심어서 천하에 두루 퍼졌다. 내가 연인(燕人)에게 들으니 그 말에, “가짜 홍삼을 모르는 것이 아니나, 백삼에 비하면 독이 없으니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다.” 하였다. 근래에는 아편(鴉片)이 성행하여 여러 경로로 매매하는 이가 많다. 책시(柵市)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풍천(豐川)ㆍ장연(長淵) 해상(海上)과 관북시(關北市)에서도 매매가 되고 있으니, 이는 모두 내가 직접 본 것이다. 중국 사람의 필기(筆記)를 상고하건대, “백제(百濟) 삼에 수염이 있는 것을 황삼(黃蔘)이라 하고, 고려 삼은 자단삼에 가까우며 신라 삼에 버금간다.” 하였다.
- <임하필기> 춘명일사(春明逸史) 홍삼(紅蔘)의 시원
又所啓, 頃以今番關西列邑從戰將士之有功勞, 而見漏於本道成冊者, 令道帥臣, 追後査報, 以爲草記後, 竝施賞加之意, 筵奏分付矣, 卽見道臣所上成冊, 則定原校吏之有勞無賞者, 爲二十五人, 依筵稟, 各施賞加之典, 前掌令承膺祚, 前正郞金致龍, 俱以簪纓, 躬執干戈, 尤爲嘉尙, 竝守令·察訪, 待窠調用, 各邑被傷校卒, 各令地方官校列, 卽爲從願差任, 軍卒則依已施之例, 特蠲烟役, 題給米布, 且有見漏於前後成冊中者, 楚山領兵中軍金致華, 其九世祖虞候珍, 壬辰死於平壤, 七世祖國寬, 戊午死於深河之役, 而致華今又自願出戰, 破賊之日, 斬擒各二, 以此世襲忠奮, 身蹈矢石之人, 獨漏賞典, 殊爲可惜, 與定原諸校, 一體賞加施行, 義州中軍前縣監金思喆, 自亂初出, 而募集村兵, 入而衛護主將, 守城之時, 實賴其力, 令該曹待窠甄復, 座首嘉善趙載燁, 守城及防守關隘等節, 盡誡殫勞, 使壓境之賊, 不得直犯, 相當實職調用, 民兵將張至憲·張至賢·林尙沃, 不待官令, 自募民兵, 首先登堞, 終始固守, 竝帖加成給, 何如, 上曰, 依爲之。
- <비변사등록> 순조 12년 8월 29일.
아현.
자단삼(紫團蔘)은 태항산(太行山)과 난약산(蘭若山)에서 산출되는데 천하의 보배로 여긴다. 순조(純祖) 초에 의주부(義州府)의 상인 임상옥(林尙沃)이 백삼(白蔘) 한 움큼을 얻어 앉은 자리에 두었는데, 마침 따뜻한 물에 젖었다가 온돌에서 말라 색이 변하여 붉게 되었다. 연경(燕京)에 가지고 들어가서 시험 삼아 그 나라 사람에게 물으니, 그 사람들이 크게 놀라며 ‘촉삼(蜀蔘)이 조선에서 생산되었다.’고 하고는 후한 값을 쳐주었다. 다음 해에 쪄서 홍삼을 만들어 조금씩 가지고 들어갔고, 또 그다음 해에 역시 그렇게 하여 드디어 큰 상인이 되어 두 나라에 이름이 났다. 지금은 저들이 수삼(水蔘)을 사서 홍삼으로 변조하였고, 백삼과 함께 심어서 천하에 두루 퍼졌다. 내가 연인(燕人)에게 들으니 그 말에, “가짜 홍삼을 모르는 것이 아니나, 백삼에 비하면 독이 없으니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다.” 하였다. 근래에는 아편(鴉片)이 성행하여 여러 경로로 매매하는 이가 많다. 책시(柵市)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풍천(豐川)ㆍ장연(長淵) 해상(海上)과 관북시(關北市)에서도 매매가 되고 있으니, 이는 모두 내가 직접 본 것이다. 중국 사람의 필기(筆記)를 상고하건대, “백제(百濟) 삼에 수염이 있는 것을 황삼(黃蔘)이라 하고, 고려 삼은 자단삼에 가까우며 신라 삼에 버금간다.” 하였다.
- <임하필기> 춘명일사(春明逸史) 홍삼(紅蔘)의 시원
又所啓, 頃以今番關西列邑從戰將士之有功勞, 而見漏於本道成冊者, 令道帥臣, 追後査報, 以爲草記後, 竝施賞加之意, 筵奏分付矣, 卽見道臣所上成冊, 則定原校吏之有勞無賞者, 爲二十五人, 依筵稟, 各施賞加之典, 前掌令承膺祚, 前正郞金致龍, 俱以簪纓, 躬執干戈, 尤爲嘉尙, 竝守令·察訪, 待窠調用, 各邑被傷校卒, 各令地方官校列, 卽爲從願差任, 軍卒則依已施之例, 特蠲烟役, 題給米布, 且有見漏於前後成冊中者, 楚山領兵中軍金致華, 其九世祖虞候珍, 壬辰死於平壤, 七世祖國寬, 戊午死於深河之役, 而致華今又自願出戰, 破賊之日, 斬擒各二, 以此世襲忠奮, 身蹈矢石之人, 獨漏賞典, 殊爲可惜, 與定原諸校, 一體賞加施行, 義州中軍前縣監金思喆, 自亂初出, 而募集村兵, 入而衛護主將, 守城之時, 實賴其力, 令該曹待窠甄復, 座首嘉善趙載燁, 守城及防守關隘等節, 盡誡殫勞, 使壓境之賊, 不得直犯, 相當實職調用, 民兵將張至憲·張至賢·林尙沃, 不待官令, 自募民兵, 首先登堞, 終始固守, 竝帖加成給, 何如, 上曰, 依爲之。
- <비변사등록> 순조 12년 8월 29일.
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