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어려운 시대의 사랑

잡기(雜記) 2016. 3. 31. 00:10 Posted by 아현(我峴)

사랑이 어렵다고 한다. 실제로는 사랑 그 자체가 어려운게 아니라. 두 연인 사이의 사랑이 형성되는 것이 어렵다는 말이다. 그런데 점점 어려운 사랑이 불가능에 가까워지고 있다. 일본이 장기불황을 겪으면서 사토리세대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꿈도, 목표도 실현하기 힘든 세대가 도달하는 깨달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즉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을 자신의 삶에서 실현하겠다는 의미다.


이제 한국에서도 이런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예전에 우석훈 선생이 청년을 가리켜 88만원세대라고 불렀다. 그런데 지금은 삼포세대라고 부른다. 한달에 88만원을 버는게 문제가 아니라 연애, 결혼, 출산을 하지 않겠단다. 그것을 하지 않겠다는 강제된 선택이 아니라 그것을 체화하여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왜 그랬을까.


사랑은 본래 타자안의 무엇에 매혹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대상a라고 부른다. 대상a는 타자 안에서 타자보다 더 한것, 타자를 사랑의 대상으로 만드는 그 무엇이다. 대상a는 타자 안에서 감춰진 채로 주체를 매혹하지만 그것이 타자 안에 있다고 여겨지는 순간 타자의 모든 것, 타자의 행동 하나하나, 타자의 취미, 생각 하나하나가 모두 사랑의 대상이 된다.


대상a를 통해 타자를 사랑하게 되면 다음에는 타자가 반응하게 된다.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감정에 대한 여러가지 변형을 보여주는데 내가 남을 사랑한다는 것에 대한 사랑받는 자의 반응을 두 가지로 구분했다. 첫번째는 타자의 사랑을 통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방식이다. 즉 자기사랑의 방식이다. 그런데 사랑받는자는 그 응답을 사랑하는 자에게 해 주어야 하는데 그것을 하지 않는 경우이다. 대표적으로 신이 있다. 신은 그 자체로 완벽하기 때문에 사랑을 받아도 응답하지 않는다.


두번째는 사랑받는 자는 자기 안에 있다고 여겨지는 기쁨의 원인을 알지 못하고 사랑을 되돌려 주게 되는데 이때 우리는 사랑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사랑은 자신이 가지고 있자 않은 것을 돌려주는 행위이다. 사랑은 필요와 다르며 필요가 충족될 수 있는 것이라면 사랑은 충족될 수 없다. 사랑에 빠진 자는 자신이 상실한 대상a를 타자에게서 추구한다. 그리고 그것은 낭만적 사랑에게 종종 나타난다. 예를 들어 첫사랑.


낭만적 사랑은 개인의 쾌락이 중요해지고 그러한 쾌락이 사회적 제도나 법과 충돌하는 근대 이후에 생겨났다. 오히려 금지 때문에 더욱 빛나기도 한다. 그러나 대상a가 한 순간 드러나 버리면 그것은 한낯 충동의 대상이 되어버리고 그 충동을 만족시키기 위한 노력만 남게 된다. 그것을 우리는 섹스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섹스 이후 충동은 완전히 사라지고 사랑에 대한 욕망 또한 사그라지게 된다. 그러므로 대상a는 노출되어서는 안된다.


사랑에는 타자의 욕망이 개입된다. 사랑하는 주체는 욕망의 주체라면 사랑받는 주체는 사랑을 되돌려 주면서 자기 차례에서 욕망의 주체가 된다.


이제 우린 사랑을 비즈니스라고 판단한다. 즉 대상a를 표준화하고 그것을 통해 욕망을 추구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이제 대상a도 기를 수 있는 능력이 되어 버린다. 그게 우리가 사랑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무엇으로 평가하려고 하지 말자. 그게 정답이 아닐까.


* 참고문헌 : 정지은, "왜 우리는 사랑하기가 점점 더 힘들까",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 2015년 3월호.


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