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신화와 민족국가의 허상

사편(史片)/고대사 2009. 5. 19. 00:33 Posted by 아현(我峴)
단군신화와 민족국가의 허상

민국에는 단일민족에 대한 신화가 퍼져 있습니다. 이제는 아주 흔히 단군이라는 이름을 들을 수 있습니다. 단군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단군으로부터 출발한 혈연민족으로서의 한국인은 단일민족일까.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어설픈 부분들이 많습니다. 단군 이후에 기자의 후손을 표방한 무리들이 나타나는가 하면 발해 유민이 집단 이주해 오는 등의 사례를 수없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여러 민족 혹은 국가와의 전쟁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한반도를 오고갔습니다. 이러한 사실만 보아도 단일민족의식은 하나의 신화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고조선의 역사로써 단군의 실체와 한민족의 공통조상으로서의 단군의 의미는 엄청나게 큰 차이가 있습니다. 고조선 속의 단군은 사서에 기록된 역사적 (사실은 신화적) 의미를 가지지만, 조상으로서의 단군은 거의 무의미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각 성씨의 족보를 보면 중국으로부터 도래했다는 주장(!)이 많으며 토착 성씨들도 보면 모두 자신의 시조를 가지고 있지 단군과 연결짓는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이는 조선후기까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단일민족으로써의 단군 의식은 언제 나왔을까. 아무리 올려잡아도 개항기 넘어로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이 현재의 연구결과인데, 아마도 민족이라는 말의 출현과 더불어, 민족의식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동시에 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제국주의 침탈을 통해, 분단이라는 현실을 통해 국민을 하나의 결사체로 만들기 위한 민족의식의 고취는 바로 단일민족을 상징하는 단군으로 나타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이 나쁘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 당시의 민족의식은 상당한 긍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었고, 당연한 발로였습니다. 일제로부터 독립을 위한 중요한 방편이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그러한 순기능은 이제 역기능으로 우리에게 되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간단한 예를 들면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이나 조선족 동포에 대한 대우를 생각한다면 과연 민족의식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지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민족의식을 가진다는 것이 다른 민족을 바라보는 이중적인 잣대가 된 것이죠.

이제는 단일민족의 허상이나 혈통의 순수성이라는 신화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나라가 위험에 처해 있을 때에는 민족의 구심점으로써의 단군을 내세운 것은 당연하지만, 이제 그러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다른 민족들이 한반도에 들어와 우리와 같이 살아가기를 원하고 있으며, 그들이 없이는 더이상 우리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민족의식을 어떻게 하면 현실에 맞는 사상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까요. 이제 고민해야 할 때가 온 듯 합니다.

출처 : 한홍구, "우리는 모두 단군의 자손인가", <한겨례21> 344호, 2001년 2월 8일자.

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