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여성의 보학교육

사편(史片)/조선시대 2009. 5. 19. 00:25 Posted by 아현(我峴)
조선후기 여성의 보학교육

보학(譜學)은 가문의 족보에 대한 지식 혹은 학문체계를 말합니다. 족보를 통해서 가문의 내력을 알고 특정 인물의 가계 배경을 안다는 것은 사대부의 기본적인 교양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모르면 양반 행세를 하기 힘들었죠. 가계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자기 가문 뿐만 아니라 다른 가문의 족보도 널리 섭렵(!)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보학교육은 여성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보학은 조선후기에 들어와 급증하게 됩니다. 신분질서 속에서 족보가 양반 신분을 증명하는 수단으로 기능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족보가 없으면 양반 체면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문중 간에 경쟁 의식도 생겨서 우월의식을 과시하는 수단이었습니다.

조선후기 각 가문은 가문의 위상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보학 교육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여성들은 족보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습니다. 족보는 한문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죠. 더욱이 족보의 간행에는 경비가 많이 들어서 모든 집에 소장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종가에 보관되어 있는 족보를 참고하여 각 집안의 직계만을 기록한 가첩(家牒)을 만들었습니다. 또는 한자 옆에 한글로 작게 써 두거나 순한글로 한글족보를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보다 여성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규방가사 형식으로 소위 세계가(世系歌)를 짓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한글족보와 규방가사는 여러 가지 장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언문으로 되어 있어서 습득하기가 쉬웠으며 또한 이해하기도 편했습니다. 또한 노래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암기하기도 편하였고, 이것이 전사(傳寫-옮겨 적음)되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었습니다.

대개 보학 교육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습니다. 첫째는 조상의 계보를 정확하게 인식하여 자신의 위치가 어디쯤인지 알 수 있었으며, 둘째로 조상의 방계를 파악하여 현재 동족간의 친소나 원근 관계를 밝히는데 목적으로 두었습니다. 동족간의 위계질서를 확보하는 것이 곧 족적 결속력을 강화하는 바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조상의 산소 위치와 제사일을 기억하는 것으로 조상 숭배의 첫 실천이 되었습니다. 조상에 대한 묘사나 제사를 모시는데 있어서 산소의 위치와 제사일을 기억하는 것은 기본적인 암기사항이었습니다. 넷째는 조상의 사적과 업적을 찬양하여 자부심을 가지고 가문의 위상을 높일 수 있었습니다. 다섯째는 문중의 서원과 사우에 대해 상세히 기록함으로써 이를 통한 문중의 결속을 강화했는데, 서원은 향촌사회에서 가문이 가지는 위치를 공고히 하여 그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여섯째는 여성의 시가 뿐만 아니라 외가까지도 기록하여 나아가 팔고조도를 작성하기도 하여 동족의 범위를 친가에 머물지 않고 외가까지 확대하였습니다.

이러한 보학 교육은 결국 사대부의 결속을 강화하고 지속시키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남자로 이어지는 가문의 결속은 이들이 얼마나 가문의 유속을 잘 지켜나아가는가에 따라 달려있기도 하였지만, 여성이 그 속에서 차지하는 위상 또한 결코 적지 않았습니다. 현대 여성사에서는 근대적인 시각을 가지고 조선후기의 여성을 억압에 갖힌 존재로 파악하는 경향이 강하였지만, 당시의 시대상에서 여상이 가지는 위치를 다시 생각한다면, 가문이라는 영역에서 여성이 지니는 역할은 결코 작지 않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 : 차장섭, "조선후기 여성의 보학교육", <한국사학보> 32, 2008.

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