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팽창과 환경문제

사편(史片)/그외 2009. 5. 19. 00:19 Posted by 아현(我峴)
유럽의 팽창과 환경문제

근대초 유럽인들이 세계 각지로 진출한 소위 유럽의 팽창은 근대사의 중요한 쟁점의 하나로 부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중에서도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환경의 변화일 것입니다. 유럽의 팽창으로 인한 세계인들의 접촉으로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대개 환경문제는 근대 이후의 일로 다루기 일상입니다. 상대적인 자료의 부족으로 인해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는 않지만, 근대 이전시기에 환경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16~18세기는 그 어느때보다도 지구상의 환경문제가 크게 변화한 시기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이해를 가지는 것은 유럽의 팽창으로 인한 문제들을 좀더 심도있게 살펴보는 계기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역사학에서는 상당히 낯선 환경문제를 처음 제기한 사람은 앨프레드 크로스비입니다.(한국어 번역본이 있는데, <생태제국주의>, <콜럼버스가 바꾼 세계>등이 있습니다) 그는 ‘콜럼버스 교환’이라는 개념을 제시하여 이 부분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그의 이론을 들여다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구상에서 ‘생물학적 교환 현상’은 끊임없이 이루어지지만 15세기 말 유럽인들의 해외팽창은 이를 가속화시켰다고 합니다. 무엇 때문에 유럽인들은 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에서 선주민을 몰아내고 이 지역의 완벽한 지배를 가능하게 했을까.

우선 그는 기후요인을 들어 설명합니다. 네오유럽(Neo-Europe)로 불리는 지역들은 그들이 본래 살고 있던 유럽과 비슷한 기후조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유럽의 자연 생태계를 그대로 옮겨 오는데 유리한 조건을 형성하게 됩니다. 하나의 예로 잡초의 번식을 들 수 있습니다. 화전(火田)이 이루어진 뒤에 그 자리에 잡초가 자리잡게 되는데, 유럽에서 들어온 잡초가 폭력적으로 신대륙에 있던 고유의 식물을 몰아낸다는 것입니다. 그 중 하나로 복숭아를 들 수 있는데, 복숭아씨가 싹이 나서 얼마 후에 그 지역 전체가 복숭아로 덮일 정도로 빨리 번식을 해서 후대 사람들이 복숭아의 원산지가 아메리카라고 착각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유럽산 식물의 보급과 더불어 유럽산 가축의 보급이 함께 일어났습니다. 소와 말이 대량으로 들어옴에 따라 그 피해를 가공할 정도로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1859년 호주에 들어온 토끼는 엄청난 속도로 불어나 1905년 5억마리에 달하게 되어 생태계가 거의 파괴되자 호주 당국에서 토끼에게 치명적인 병을 일으키는 병균을 퍼뜨려서 토끼를 멸종시키는 방법을 구사했으나 실패에 그치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태계의 변화가 인간의 활동에 의해 초래되었고 또 그러한 생태계의 변화가 때로 인간의 문화현상과 긴밀하게 연관된다는 설명은 이 이론의 강점이지만, 달리 생각하면 인간 행위의 의미를 축소시킬 우려가 크다는 점도 같이 가지고 있습니다. 이로인해 서구 제국주의의 폐해에 대한 면죄부를 줄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죠. 유럽인이 아메리카와 호주, 뉴질랜드를 지배하게 된 것은 인간의 힘을 벗어난 환경의 거대한 힘의 결과로써 필연적인 과정이라고 논리가 전개될 수 있기 때문이죠.

이와 관련된 몇가지 문제제기가 가능해 지는데, 하나는 유럽인들이 도착할 당시 아메리카 대륙은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순수한 상태의 자연이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는 개항기 이후의 조선에 대한 문제로도 환원이 가능한데, 이는 지난번 조선후기의 산림황폐화에서 다루었던 내용과 연관이 되는 문제입니다. 두 번째는 생태론적 인디언이라는 문제를 들 수 있는데, 인디언 문명은 자연과 완전히 혼연일체가 되어 살며 결과적으로 자연을 전혀 해치지 않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문제제기 자체가 상당히 근대적인 질문이고, 유럽중심주의적인 문제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항기에 외국인들의 기행문에, 한국은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고 하는 것도 되짚어 생각하면, 자연 그대로의 삶을 산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세 번째는 유럽인들은 한편으로 세계의 자원을 약탈하면서 동시에 자연보호 개념을 형성한 점을 거론할 수 있습니다. 자연파괴의 관점을 먼저 생각한 사람은 선주민이라기 보다는 유럽인들 자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방식은 곧바로 오늘날의 자연보호 의식과는 같다고 할 수는 없으며 단지 장기적으로 자연자원의 이용 가능성에 대한 진일보된 사고방식이라고 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입니다.

요즘 역사인식에서 환경문제가 대두하고 있습니다. 동양사든 서양사든 마찬가지입니다. 주변부의 영향에 대한 인식의 전환은 역사를 다르게 볼 수 있는 힘을 가져다 주었다는 점에서 크게 되짚어 보아야 할 부분입니다.

출처 : 주경철, “유럽의 팽창과 환경문제”, <서양사연구> 35, 2005.

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