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문중화와 친족

사편(史片)/조선시대 2009. 5. 19. 00:05 Posted by 아현(我峴)
조선후기 문중화와 친족

현대사회에도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문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국사학계쪽에서는 80년대에서 90년대까지 '향촌사회사'라는 이름으로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문중'이었습니다. 특히 그 지역에서 유명한 문중을 중심으로 문중이 만들어진 배경 내지, 변화상과 문중이 유지될 수 있었던 특성이 중심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현대사회에도 여전히 투영된 인식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러나 조선후기도 3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어서 각 시기마다의 문중에 대한 인식과 형태는 달랐습니다. 이번 강의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문중은 언제 만들어지고, 그 이전에 존재한 친족구조는 어떠했는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조금 알고 있는 문중과 조선후기의 문중과의 차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1) 19세기 이후 굴절되고 왜곡된 문중조직의 말기적 현상, 2) 일제와 해방이후의 혼돈사회를 거치면서 더욱 증폭, 변질된 모습,3) 현대사회의 우리 주변에서 보여지는 가문 이기주의나 특정 이해의 반영모습을 보면 조선후기의 그것과 마치 같은 것처럼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한국사회의 문중 조직은 조선후기의 산물이지만, 같다고는 할 수 없으며 부정적인 요소만 남아 있다고 생각하지만, 당시대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본래 조선중기 사족들은 개인의 능력과 활동이 중심이어서 혈연적 기반은 제한적으로만 관계를 하고 있었습니다. 소위 가문이라는 인식도 그렇게 크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의아해할 수도 있는 부분인데, 적장자 중심이 아니었다는 것을 생각하시면 이해하시기 쉬울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친족 구조를 가지게 된 것은 17세기 중엽 이후부터인데, 주된 내용은 양계친에서 적장자 중심의 부계친족으로의 변화, 제사상속 및 상속상에서 장자 우대의 경향, 족보의 친족수록 범위의 축소, 입양제도의 변화, 그리고 동족마을의 형성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왜 17세기에 이러한 변화가 나타날까요.

현재의 논의 수준에서 이야기 하자면, 하나는 예제(禮制)의 보급을 통한 친족제도와 인식의 변화, 즉 예송을 통해 조선 전 지식인의 예서(禮書)에 대한 인식이 심화되었다고 할 수 있죠. 다른 하나는사회사적으로 향권과 관련된 사족의 현실대응의 필요성이 있는데, 관권(수령권)이 강화됨에 따라서 사족들의 힘이 약화될 가능성이 커지자, 사족들은 이제 중기까지의 모습은 개인의 능력이나 활동이 아닌 혈연적 기반(문중)을 통해서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하려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죠. 이를 사족지배체제의 해체라는 말로 학계에서는 쓰고 있지만, 저는 해체가 아닌 변질이나 변화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봅니다. 결국 사족의 지배체제는 조선말기까지 유지되니 그렇게 이해하는 것이 타장할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의 가장 큰 특징은 결국 '문중화 경향'입니다. 한 군현 내에서 유력 양반끼리 모이던 모습에서 같은 현조(顯祖-유명한 조상)를 모시는 가문 구성원끼리 뭉치는 경향을 지칭합니다. 이러한 문중 조직은 구성원들의 자체 결속과 그것을 통한 지위의 확보, 유지에 목적을 둡니다. 왜냐하면 양반이 국가에서 인정된 고정적인 신분이 아니기 때문에 끊임없이 지역에서의 권력을 유지하려는 모습을 보여야 권위가 선다고 말할 수 있죠. 이러한 것들은 동족마을을 형성하여, 자신들의 공간을 마련한다거나, 문중의 현조를 모시는 서원(문중서원)을 건립하여 사적인 조직을 공적인 공론(公論)형성의 장으로 마련하여 자신들 위주로 주도한다거나, 자신들의 현조의 행적을 재평가하고(추숭, 정려, 신원, 추증), 유적을 현창한다거나(신도비, 행장, 영당), 국가에서 인정받은 건물을 건립한다거나(서원, 사우), 문중권위를 홍보한다는(파보, 족보, 문집의 간행)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문중이라고 하면 유구한 한 가문의 전통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무리 유명한 가문이라고 17세기 이상을 올라가지 못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어떠한 가문들은 19세기에야 이러한 활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문중화경향도 역사적으로 평가한다면, 사족(양반)들이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전통으로 포장하는 것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입니다.

출처 : 이해준, 조선후기 문중화 경향과 친족조직의 변질, [역사와 현실] 48, 2003.

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