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편(史片)/조선시대

조선시대 공론

아현(我峴) 2009. 5. 18. 23:49
조선후기 공론

양반 유생은 유학을 공부하는 재야의 지식인을 통칭하는 것으로 사마시에 합격한 생원, 진사를 비롯해 유학으로 지칭되는 부류들이 포함됩니다. 양반유생은 신분적으로 지배계층에 속하여 사회경제적으로도 그 지위를 보장받았지만 관료로 진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는 중인, 상인, 천인과 마찬가지로 통치의 대상에 해당되었습니다. <경국대전>에 유생의 정치참여가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한 것도 그들의 충군의 대상이자 통치의 객체에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왕조의 정치운영 구조가 공론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자리를 잡아가면서 공론형성층으로서 양반 유생의 역할이 점차 부각될 수 있었고, 그들의 정치참여를 위한 길도 마련될 수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양반유생들이 공론을 표방하며 정치에 참여하는 방법은 상소 이외에는 없었습니다. 그것은 아조도 마찬가지죠. 그들의 상소는 일반적으로 유소(儒疏)라 불렀습니다. 유소는 양반관료의 상소와 성격상 일치하는 것이기는 하나 언관을 포함하는 관료의 그것이 주로 조정의 공론을 반영하는 재조언론으로 규정될 수 있는 데 반해, 사회 전반의 공론을 반영하는 순수 재야 언론이라는 점에서 다소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관료 정치의 구조에서는 부차적 관계 또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양반유생의 공론을 포괄하는 정치세력의 역학구조가 확립될 경우에 가능한 것입니다.

성종대에 들어와 관학생을 중심으로 양반유생의 정치참여 경향이 두드러지고 그들의 상달(上達)에 공.사가 혼재됨에 따라 정치.사회상을 반영하는 것을 사적인 소원과 구분할 필요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에 상소. 상언, 상언, 계. 차의 구분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구분은 왕에게 상달되는 내용의 공.사 구분을 분명히 하고 상소의 공론성을 강화하면서 그 자격을 지배계층으로 국한 하였습니다. 따라서 신분 여하를 막론하고 사적인 송사는 모두 상서. 상언을 통해 해결해야 했고, 상소를 표방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성종대 국가의 공적인 일에만 상소하도록 제한하는 규정은 양반유생의 공론형성층으로서의 정치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자 유소의 공론성을 보장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연산군의 군주 전권체제에 따라 일시 차단되었던 그들의 공론형성은 중종반정을 계기로 군신정치의 논리가 강조되고 기묘사림이 등장하면서 활발하게 전개되었습니다. 인종대 성균관이 공론소재로서 사헌부, 사간원, 홍문광과 대등한 위상을 확보하게 되는 것은 그 결과였습니다.

이러한 양반유생의 공론의 급속한 성장에는 왕실의 숭불행위가 특히 촉매제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언관들의 윤형원 탄핵에 발맞추어 경상도 진사 김우굉이 소두(疏頭)가 되어 전후 22차례에 걸쳐 상소하는 등 결집된 공론을 배경으로 보우의 처단을 주장함으로써 재조공론과 역할 분담을 통해 척신정권을 와해하는데 기여했습니다. 선조대에 이르러서는 특정 권력집단에 의존하지 않고 유생을 포함하는 양반사림의 공론을 근간으로 정국을 운영하게 되는 공론정치의 기조가 마련되기에 이릅니다.

조선시대의 정치는 재조 뿐만 아니라 재야 양반유생의 공론형성을 보장한 공론정치 구조를 근간으로 하여 전개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공론정치는 정치참여 가능층의 확대를 보장하여 특정 집단의 권력독점을 차단하기 위한 장치로서, 그 과정에 굴곡과 파탄이 있었다 할지라도 18세기까지 군주와 양반사림의 합의에 따른 정국운영의 근간으로 존속하였습니다. 또한 공론정치는 양반사림이 상호공존과 견제의 논리로서 적용해 온 붕당정치와 불가분의 관계이기도 하였습니다. 붕당정치에서 군주를 비롯한 권력구조에서 경계의 대상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당론대결을 공론대결로 인식하는 시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붕당과 공론이 현실적으로 유기적인 관계에 있었으나, 명분상으로는 붕당을 부정하고 공론을 보장하는 형태로 전개되었습니다. 그것은 공론정치가 군주를 비롯한 권력구조를 포괄하여 운영된 것이라는 점을 말합니다. 결국 조야 양반의 공론형성을 보장하는 공론정치를 근간으로 하면서 정치세력의 공론대결을 통한 정치가 전개되었던 것입니다.

공론에 대해서 더 알고 싶은 분은 다음 책을 읽어보시길....
 -> 설석규, <조선시대 유생상소와 공론정치>, 선인, 2002

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