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기(雜記)

야간운전

아현(我峴) 2010. 12. 8. 04:25

서울에서 출발해 새벽 4시에 공주에 도착했다. 일명 야간운전. 물론 야간운전이야 저녁 7시만 되어도 하늘이 깜깜해지니 야간운전이라 할 수 있지만, 새벽녁 차 하나 없는 도로를 달리는 운전이야말로 야간운전이라 이름할 만하다. 경부고속도로를 타는 내내 한산한 도로 위를 내달렸다.

새벽에 타는 고속도로는 화물차가 대부분이다. 휴게소도 화물차가 대부분이다. 새벽운전은 몇번 해 본적이 있다. 보통 사람에 비하면 오히려 많을지 모르겠다. 신혼여행을 제주도로 갔다 와서 목포에 도착하고 나서 새벽 5시에 공주에 온 적도 있고, 안동에서 선배와 술한잔 하고 새벽 2시에 출발해서 6시에 공주에 도착한 적도 있다. 그런데 특이하게 새벽 도로는 화물차가 늘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의 일상과는 다른 이들이다. 자고 있을 때 도로 위를 달리는 이들은 확실히 다른 세상 사람들이다.

야간운전을 좋아한다. 그래서 다들 만류하는데도 새벽에 온 것이다. 아마 술에 약간(?) 취했어도 운전하고 왔을지 모른다. 충남대에서 선생님과 술마시고 대리운전하라도 돈을 주셨는데, 그 돈 받고 그냥 차 끌고 공주에 간 적도 있었다. 야간운전이 난 너무 좋다. 건양대에서 8~9시까지 공부하다 집에 갈 때면 낮에 운전하던 느낌과는 완전히 다르다. 같은 길을 달리고 있는데도 그 길에 어둠이 내리면 전혀 다른 세상이 된다. 아니 그 세상은 사라지고 어둠만 가득하다.

한적한, 그 누구도 없는 세상을 나 혼자 내달리고 있다고 생각할 때 나는 다른 세상에 와 있게 된다. 아무도 없고 단지 별과 달만 바라보이는 그곳은 곧 나 자신이 되고 온갖 집념과 고민들이 다른 세상의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한참 심취하고 있으면 핸들을 잡고 있는 손은 나도 모르게 저절로 움직이고, 차에 맡겨진 나의 몸은 스스로 분리된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차는 차대로 나는 나대로, 내 생각은 내 생각대로 그 어둠 속에서 각기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

오늘 처음으로 걱정해준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늘 남을 걱정해주며 살았는데, 내가 남에게 걱정을 받는다는 것은 꽤 충격이었다. 내 자신감이 지나치게 강해서 그럴까. 야간운전을 해도 늘 자신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심지어 술에 약간 취해 있어도 자신감 하나로 운전대를 잡고는 했다. 그래도 누구 하나 걱정해주지 않았다. '넌 잘할 수 있을테니까' 요즘까지 늘 자주 듣던 말이었다. 그래서 아무도 걱정해 주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런데 오늘 나를 걱정해 주었다.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늘 받았던 나에게 걱정이라는 말은 오히려 나도 인간이구나, 나도 사람이구나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솔직히, 야간운전하며 오늘은 꽤 피곤했다. 졸리기도 하고 어딘가 눕고 싶었다. 천안 쯤 왔을 때에는 눈꺼풀이 자꾸 내려 앉았다. 정신도 몽롱했고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자꾸 풀리기도 했다. 그건 아마 강의할 때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늘 그렇다고 생각하고 지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