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일기 1891년 1월 2일

사편(史片) 2008. 4. 21. 20:54 Posted by 아현(我峴)
맑음. 아침을 일찍 먹은 뒤에 박대감을 찾아뵙고 모시고 이야기하였다. 조금 있으니 대감께서 갑자기 묻기를 "너의 조상 중에 이름난 분이 누가 계시는가?" 라고 하기에, 내가 답하여 고하기를 "미천한 후생에게 무슨 이름난 조상이 있겠습니까?" 라고 하니, 대감께서 말씀하기를 "그렇지 않다. 고려조에 지씨(池氏) 성 중에 명환(名宦)이 있었는데, 너의 선조가 아니던가?" 라고 재삼 애써 물으시기에, 나는 할 수 없이 고하기를 "고려 공민왕 때에 휘(諱) 용기(湧奇)는 정책공신(定策功臣)으로 부원군에 봉해졌고, 평장사 휘(諱) 경(鏡)은 저의 시조입니다." 라고 하였다. 대감께서는 "휘 윤(奫)은 너의 선조가 아닌가?" 라고 하기에 나는 일찍이 지씨 선조에 윤이란 분이 계셨다는 말을 들었으므로 "선세(先世)입니다"라고 하였더니, 대감께서 "그럼 우리 집안과는 대대로 내려오는 원한이 있으니, 다시는 나를 찾아오지 말거라"라고 하셨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몹시 놀라고 의아스러워 즉시 ㅇ니사하고 돌아왔으나, 그 선세 사적에 대하여 아직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박 대감께서 취중에 하신 말씀이라 끝내 의심이 풀리지 않으니 몹시 답답하고 답답할 뿐이다
(<하재일기> 1891년 1월 2일조,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역본, 2005, pp. 49~50)

위 일기는 공인(貢人)인 지씨(池氏)라는 사람의 일기이다. 이름은 모른다. 2005년에 서울시사편찬위원회에서 본역본이 나와서 간간히 읽고 있다. 위 내용은 두 번째 페이지에 있는 내용인데, 느낌이 오는게 좀 많아서 옮겨 적어본다. 박대감과 지씨의 대화인데, 각기 선조에 대해서 문답이 오고갔다. 그런데 문득 박대감이 서로간의 집안에 원한이 있으니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했다. 지씨는 이 말을 듣고 어리둥절해 하는 내용이다. 1891년이면 이미 개항기 시대인데도 가문에 대한 인식이 강하게 남아있다. 그리고 지씨는 위 내용을 잘 모르는 것으로 보아 가문의 격이 많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의 원한을 수백년이 지난 뒤에 다시 언급하여 현실에 적용하는 것을 과연 우리는 이해할 수 있을까? 계속 읽어보아도 지씨가 박대감을 다시 만났다는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어쩌면 박대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지씨의 생각 속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08.04.21. 我峴 記